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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6. 2022

무심코 아침 떡갈비

시간이 알려준 비법 


“아침에는 국 하나만 밥 먹어요. 평소보다 국에 건더기가 좀 많게 끓이는 건 말고는 특별히 신경 쓰는 건 없어요.”

매일 만나 공원을 함께 도는 동네 친구는 아침밥 준비하는 일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했다. 집집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여기면서도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한번 해 볼까? 얼마나 간단해’ 이렇게 결심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맞이하면 다른 마음이다.      


의식적으로 큰 생각을 하고 음식을 준비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좋다. 마음이 고요하고 아무런 감정이 내 가슴속에 끼어들지 않은 날이 그랬다.  봄날의 밖은 생각보다 일찍 밝아오고 5시 반을 넘어서니 눈이 절로 뜨였다. 부엌으로 가서 아침 준비를 한다. 무얼 할지 생각나지 않아서 냉장고 문을 열어서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닫았다.   

어제 만들어 놓은 메추리 알 장조림과 멸치볶음이면 괜찮다 했지만 뭔가 허전해서 다른 걸 해보기로 했다. 주말에 사다 놓은 간 돼지고기를 꺼냈다. 떡갈비를 만들기로 했다. 양파와 당근, 청양고추, 대파를 다지고 간장과 맛술, 소금, 매실청으로 간했다. 계란 하나와 빵가루를 조금 넣은 다음 열심히 손으로 치대었다. 한 끼 분량으로 여섯 개를 만들었다. 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이것을 차례로 중간 불에서 익혔다. 요란할 것도 없이 두 손을 움직이다 보니 다 익었다.      


식탁에 이것저것을 꺼내놓은 아침식사가 마련되었다.

“엄마, 이거 마트에서 사 온 거야? 파는 것 같은데.”

“아니야. 아침에 만들었어.”

맨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 큰 아이가 예상에 없던 메뉴를 보고 놀란다. 마음에 드는 맛이었는지 밥 한 공기를 먹더니 조금 더 떠서 고기 몇 조각을 먹고는 방으로 갔다. 떡갈비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집안일을 하다 문득 몇 시간 전 아침 풍경이 그려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돌았다. 별생각 없이 특별히 기대 없이 만든 음식을 모두가 반긴 아침처럼 모든 일이 그랬으면 좋겠다. 밥을 준비하다 보면 며칠 전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찬을 준비할 때가 있다. 시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식사시간에 맞춰 정성스럽게 마련한다. 그동안 여러 과정을 거친 만큼 정말 맛있는 한 그릇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들인 시간에 비해 실망할 때도 왕왕 있다. 그런 날은 기운이 빠진다. 직장에서 잘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을 때와 비슷하다. 살아가는 일과 음식 만들기도 어쩌면 비슷하다. 노력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을 때도 많다. 단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족한 틈을 조금씩 채워갈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떡갈비는 성공작이다. 아침에 즉흥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만들었지만 훌륭했다. 길어야 삼십 분 안팎이었는데 그리 분주하지도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재료를 손질하고 팬에 올렸다. 다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었던 주변을 둘러보아도 소란스럽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끼 먹거리를 만든 순간이 여러 가지 생각을 머물게 하는 것도 신기했다.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었다. 익숙해서 습관처럼 굳어졌지만 이것만큼 쉼 없이 하는 게 없다. 

매일 도마를 붙들고 야채를 썰었고 기름과 소금과 적당한 양념을 더해 반찬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계란 프라이 하나로 끝났다. 가끔은 포장된 조미김이 최고인 밥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모두가 내 손을 거쳐갔다는 것. 반복은 자연스러운 배움이 되어 저울에 재료를 올리거나 계량스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눈썰미가 생겼다. 매일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엄마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 적은 없다. 어쩌다 보니 전업주부가 되었고 워킹맘이던 시절은 옛이야기 속으로 가물가물하다. 힘을 빼고 특별한 의지를 담지 않고 적절히 시간을 조절하며 늦지 않도록 만들었고 아침상은 떡갈비로 빛났다. 그냥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것을 쉼 없이 진행하는 게 일상의 보석인듯하다. 떡갈비는 그동안 부엌에서 머문 내 시간이 만들어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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