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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1. 2022

나의 식빵 추억 사전

프렌치토스트를 만들던 날 


식빵이 몇 조각 남았다. 토요일 먹다 남은 것인데 그저 바라만 봐도 든든하다. 집에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을 때 요긴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이가 학교에 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멈췄다. 

“엄마, 오후에 프렌치토스트 해주면 안 돼?”

섣부른 답을 내놓기가 망설여진다. “그래”라는 간단한 답이 어렵다. 언제나 아침엔 몸 상태가 좋아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이상하리만치 오후가 되면 피곤이 밀려오며 뒤로 미루는 탓이다. 

“엄마, 꼭 해 줘야 해. 알았지.”

아이는 내가 답하기도 전에 문을 닫는다.    

 

점심도 지나고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다가온다. 냉장고 문을 열어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게 보이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간식을 사러 동네 떡집에라도 다녀올까 하고 망설이다 집에 있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막내가 그토록 먹고 싶다던 프렌치토스트. 예전에는 종종 만들었지만 요즘은 빵을 살짝 구워 먹는 일이 잦다. 복잡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팬 앞에 서 있는 과정이 귀찮을 때가 많다. 불과 몇 시간 전 아이가 신신당부하고 집을 나섰기에 신경이 쓰인다. 여기에 ‘집에 있는 엄만데 해줘야지’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오목한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 두 개를 꺼내어 잘 풀어놓고 우유와 꿀을 더해서 거품기로 잘 섞는다. 빵 한 조각씩 충분히 볼에 담그고 팬에 구웠다. 버터가 있어야 풍미가 좋은데 다 먹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카놀라유로 대신하기로 했다. 큰 접시에 도톰하고 부드러운 노란 토스트가 하나둘 늘더니 가득하다. 적당히 온기가 사라진 토스트를 사각으로 된 유리 밀폐 용기에 담았다. 제법 큰 통인데 다 꽉 채우고도 몇 조각이 남아서 다른 하나를 꺼냈다.

“엄마, 정말 만들었어? 우와! 맛있겠다!”

감탄사를 연발할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식빵은 취향을 담은 한 접시를 만들기에 손색없다. 빵집서 식빵을 사는 경우는 여러 가지 마음이 갈등하다 내린 결론일 때가 많다. 종종 가는 동네 빵집은 달콤한 디저트 빵이 주를 이룬다. 빵이 생각나서 부지런히 갔지만 단것들에는 거리를 두고 싶을 때, 막상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을 때는 식빵을 들고 온다. 집에서 나와 얼마간의 발품을 팔았으니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쉽다. 이때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역시 식빵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집은 토요일 아침에는 빵으로 식사를 한다. 집에 있는 것들을 모아서 샐러드를 준비하고 치즈나 과일 등 있는 것들로 식탁을 차리고 휴일을 맞이한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나 저녁이면 부지런히 식빵 한 봉지를 사다 둬야 한다. 귀찮음과 게으름에 건너뛰면 꼭 다음날 후회가 밀려온다.   

  

식빵은 내게 ‘빵’의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했다. 예닐곱 살 정도에 식빵을 알게 되었다. 도시로 나가야 제과점을 만날 수 있던 시절, 빵은 귀했다. 제삿날이면 멀리서 사는 친척이 사 왔던 보름달 빵이 기억난다. 그것 역시 공장에서 만들어져 가게에서 파는 빵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오빠가 학교 핸드볼팀 응원을 나갔다가 식빵을 사 왔다. 

“친구가 이걸 사더라고 나도 돈이 남아서 한번 사 왔어.”

오빠는 친구 따라 했다면서 담담히 말했지만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오빠가 사 온 식빵은 한 봉지에 한 500원이지 않았을까 싶다. 30년도 더 된 옛날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1000원을 넘지는 않았다. 지금 식빵의 두 배 정도였다. 긴 봉지에 가득 담긴 식빵 한 조각을 받아 들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그리 달지도 않고 고소했다. 엄마는 잼을 발라 먹어야 맛있다며 귤 잼을 가지고 나왔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그렇게 식빵을 먹었다. 아마 이때부터 우리 가족의 빵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내가 빵을 특히 좋아했다. 중학생 무렵에는 축농증이 있어서 시내 병원을 다녔다. 그때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옆 빵집에 들러 식빵 한 봉지를 샀다.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걸 사 오니?”

아버진 항상 이런 말을 하시면서도 살짝 미소 지으며 얼른 봉지를 열어 한 조각을 꺼냈다.     


오빠에서 언니로 식빵 봉지를 들고 오는 일이 잦아질 무렵이었다. 엄마가 토스트라며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 달걀 물만 입힌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했다. 빵에서 퍼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달걀이 전하는 부드러움은 고급스러운 새로운 맛이었다. 식빵은 별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먹을수록 다시 찾게 되는 신기한 매력 덩어리였다. 과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과 온 식구가 둘러앉아 빵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빵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 시간은 많이 웃었다. 그렇게 빵을 알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서너 곳의 빵집이 있다. 이곳에선 시간대별로 다른 빵이 나오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곳이든 식빵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식빵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기본이 되는 빵이라는 의미다. 오빠가 들고 온 식빵 봉지에는 어떤 종류인지를 알려주는 노란 옥수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정겨움이다. 시간은 흘러 이제 식빵 한 봉지는 옛날 그것의 절반으로 줄었다. 가격은 비교가 안 될 만큼 올랐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왠지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이 아닌 듯하다. 여름날 장맛비가 쏟아지는 저녁, 온 가족이 함께 앉아서 소박한 식빵 한 조각을 들고 떠들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이들에게 식빵은 이제 특별한 게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싫어서 혹은 의미를 만들고 싶어서 작은 손길을 더한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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