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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3. 2022

어른들의 소풍

숲에서 먹고 얘기하며 솔직했던 날


  

소풍은 설레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에는 날씨 걱정이 많았다.  잠자기 전 내일은 제발 맑은 날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간혹 하늘은 그 기도를 들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반대의 결과에 원망하기도 했다. 소풍에는 과자와 김밥이 있었다.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학교가 아니면 어떤 곳으로 나서도 괜찮았다. 동네 뒷산에 있는 풀밭에서 펼쳐진 행사여도 즐거웠다. 소풍은 일종의 탈출이었다.   

  

어른의 소풍길은 새로운 공간과의 조우였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떠나기로 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잠결에 빗소리가 조곤조곤 들린다. 소풍 가기로 한 날인데 괜찮으려나 하고 생각에 잠기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흐렸지만 비는 그쳤다.      

맛있는 음식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누군가는 먹기 위해서 어디를 떠난다고 했고, 다른 이는 만남이 주는 선물 같은 것이기에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했다. 세 명이 나선 나들이였다. 쌈밥을 먹기로 한 우리는 각자가 조금씩 준비하기로 했다. 난 돼지고기 주물럭을 맡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마자 불 앞에 섰다. 매일 하는 밥이어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건 조심스럽다. 몇 년을 만나 제법 친해진 이들이었지만 혹여나 맛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스쳤다. 평소 하던 대로 고기에 마늘, 맛술을 넣고 먼저 볶았다. 그다음 파프리카와 양파 대파, 버섯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간장과 매실청, 고춧가루를 넣고 만든 양념을 붓고는 국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 때까지 조렸다. 통에 담기 전에 하나를 들어 맛을 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아.”

혼잣말하며 내 손 맛을 칭찬했다.      


집 밖으로 나가면 가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문 열지 않은 책방 앞마당에서 차 한 잔이 그랬다. 지난해 갔던 곡성 품 안의 숲은 10시 반에 문을 여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바뀌어서 두 시간 후에나 가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즉석 카페를 만들었다. 캠핑 의자 3개를 펼쳐놓고 테이블도 꺼내어 둘러앉았다. 각자가 가져온 먹거리를 꺼냈다. 떡과 쿠키, 과일이 오르니 자연 속 초록 카페가 만들어졌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지쳐있는 마음을 시원하게 훑고 지났다. 제법 물기를 잔뜩 머금은 찐득한 흙냄새와 나무와 풀 향기가 경직된 몸을 깨운다. 빨간색이 고운 보온병에 물을 컵에 부어 차를 만들었다. 


주위는 온통 초록이다. 비가 온 뒤라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했지만, 햇볕은 따뜻했다. 목에는 스카프까지 칭칭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대어 햇빛을 충분히 느꼈다. 따뜻한 차는 피곤한 몸에 긴장을 풀어 주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나무들이 있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다. 아이와 남편이 동원된다. 만날 때마다 이들을 소환해도 매일 다른 내용이니 지루할 틈이 없다. 모두가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받는 시간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웃고 떠들었다. 책방 주인이 문을 열기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때문에 창 너머로 살짝 구경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기다리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깊은 숲 속을 지나 섬진강 물길이 세상과 맞닿은 그곳 정자에서 돗자리를 펴고 각자가 준비해온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김치와 하얀 밥, 아침에 서둘러 만든 제육볶음이 더해졌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모두 우리의 것이니 우린 부자예요.”

피천득 선생이 쓴 그림책에 실렸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풍경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한마디 거들었다.      


강 옆이라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하늘은 파랗다. 상추에 고기를 올리고 먹으니 봄날의 기운을 함께 싸 먹는 기분이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 나를 방해하는 키 큰 건물이나 올려다봐야 알 것 같은 무수한 간판도 없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강물과 간혹 가다 빨리 지나는 기차 소리가 전부다. 등나무 꽃향기가 머물다 간다. 예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신비로우면서도 참으로 편안한 한때였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얼마 간격으로 참 많은 생각이 지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라는 게 예상치도 않게 흘러가 힘들 때가 있다. 여기서는 그런 게 없다. 어른들의 소풍은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괜찮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그들도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참 빠르다. 아침부터 만나서 다섯 시간 정도를 함께 보냈다.      

“우리 잘 놀았으니 집에 가서는 애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겠죠.”

누가 꺼낸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이었다. 엄마들은 종종 이런 세상을 만나야 한다. 일상을 뒤로하고 가볍게 숨쉬기다. 어른의 소풍 역시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있었다. 조금은 비슷하고 한편으로는 다르다. 30여 년도 더 된 그때는 열심히 뛰었다면 지금은 가만히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참외 한 조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한다는 건 우리를 설레게 했다. 마음이 가벼우니 천진난만했던 그때처럼 솔직한 모습을 절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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