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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6. 2022

숲에서 밥 수다

당신을 통해 나를 보다


 

6월의 숲이 우리를 안아주었다. 금요일은 여유라는 등식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다. 언제부턴가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코로나 때는 당연히 모두가 자연스레 잊었고 몇 달 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4명의 만남은 우리가 같던 숲만큼이나 깊어지는 중이다.     


일정 기간을 두고 만나는 이가 없던 내게 특별한 기회였다. 그림책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니 의미 있다 여겼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날이 다가왔다. 지금은 책 없이도 만나지만 얼마간은 다들 그림책 한 권씩을 들고 나타났다. 단지 그림만 보고 있으면 알 듯하면서도 모를 것 같은 이야기들을 각자의 시선에 대해 얘기하고 다른 느낌을 공유해 갔다. 이제 5년째로 접어든다.      


그동안 삼겹살을 세 번 구워 먹었다. 집 밖을 나와 함께 잠자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순간을 함께 나눴다. 금요일 오후에 만나 토요일 10시 이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넘치지 않는 여정이었다. 5월에 그렇게 만났고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각자가 잘 챙겨 온다. 한 친구는 꼼꼼히 커피와 여러 종류의 차를 상자에 담고는 튼튼한 보온병에 사발면을 먹어도 충분한 뜨거운 물까지 준비한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무등산 둘레길을 자동차로  돌았다. 여름이 싫다고 아우성치던 내 마음이 사라지는 지점이었다. 숲은 며칠 전 내린 비가  충분히 적신 까닭에 여러 향이 코끝에서 머물다 갔다.     

숲  카페 

가는 내내 서로가 정신없이 떠들었다. 드라이브 길에 만난 빵집에서 한 친구가 소금 빵과 치아바타 빵을 샀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이어진 가운데 여유 공간이 있는 숲 주변에 박스를 올리고 찻상을 마련했다. 빵과 커피, 홍차까지 원하는 것을 골라 마셨다. 새들의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모두가 중학생과 고등학생, 초등생까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학교와 아이들의 생활, 자유롭게 키우고 싶지만,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드는 갈등, 귀동냥한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까지 모두가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였다. 나 혼자 힘들거나 우리 애가 유난하다 여기다가 이런 시간이 오면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한다.     


만나지 못한 시간의 얘기를 풀어내다 보면 밥시간이다. 담양의 어느 정자에서 도시락을 꺼내었다. 이렇게 도시락을 챙겨 온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모임이 그러하듯 맛집을 찾거나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서 한 끼를 챙겼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우리의 밥을 먹기로 했다. 집에서 먹던 것을 적당히 챙겨 오는 것.      


멀리 산이 보이고 논은 모내기를 마쳤다. 아직은 비어있는 듯한 논의 풍경이 여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뻐꾸기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적당한 고요 속에 쉼 없는 생명의 소리였다. 각자의 가방에서 준비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낸다. 총각무 김치와 애호박전, 제육볶음과 멸치볶음, 열무김치에 계란말이다. 대나무 작은 광주리에는 집에서 키웠다는 상추와 배추 여기에 찐 호박잎이다.    

  

어디에 손이 가야 할지 망설여질 만큼 먹을 것이 가득했다. 혼자의 힘으로 챙기려고 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을 것들을 서로가 나누어서 한 곳에 모으니 힘을 뺀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호박잎 위에 양념장을 올려서 가지런히 싸서 먹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너무 강하지 않아서 좋았다. 행복이란 단어는 이때 꼭 필요한 듯했다. 어느 곳에서 이런 평화로운 식사가 가능할까 싶다. 

     

서로가 반찬 하나씩을 준비하면서 가졌을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가슴 뭉클한 잠깐이었다. 요즘 세상에 얼마의 돈을 주고 사 먹는 일이 편하다. 무엇이든 집안의 것을 밖으로 가져오는 건 번거롭다. 혼자 먹는 일이 아니기에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간단하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선보이는 일은 조금의 용기가 필요함을 잘 안다. 내 입맛과 비슷할지 취향의 다름을 고려하게 되고 혹시나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앞선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깊은 가슴을 내어주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그건 반찬통에 무언가를 담는 일이었다. 난 애호박전과 부추 맛살 전, 토마토 샐러드를 준비했다.     

 

내 마음과 타인의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표현하는 방법에 조금씩의 차이가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쉽게 발견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조금씩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드러내기보다는 귀를 열어주는 이들이기에 진심인 집밥이었다. 밥을 먹어야 서로를 알게 된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서로를 챙겼던  우리들의 밥

최근에 인상 깊게 봤던 <뜻밖의 여정>이란 프로그램에서 오스카상의 주인공 윤여정도 그러했다. 눈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밥을 함께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쌓인 관계는 십여 년을 보통 넘겼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서 재발견된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만 많아지는 이와는 관계가 발전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집으로 돌아와 둘러앉아 밥을 먹었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 담아둔 얘기들을 나누기 위해 밥 먹을 시간을 기꺼이 준비했고, 그곳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름이 조금 더 깊어지면 다시 밥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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