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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7. 2022

수박 읽기

여름에 대한 행복한 시선


         

수박을 챙기는 일이 잦아졌다. 한 통을 사 오면 일주일 정도 온 식구가 여유 있게 먹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수박의 시간’을 위해 수박을 썰고 그릇에 채워놓는 건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늦은 오후 무렵이면 수박을 찾는 까닭이다.      

 

난 이맘때면 먹는 수박보다 읽는 수박에 끌린다. 몇 페이지 인지는 모르지만 눈에 가물가물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설레게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다 우연히 발견했다. 몇 번을 읽었고 그 이후로  여름 무렵이면 다시 만난다. 안녕달 그림책 <수박 수영장>이다.     


수박은 곧 여름이라는 등식이 어색하지 않다. 빨간 속살 안에 검은색 씨가 콕콕 박혀 있고, 한 입 베어 물면 수박 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무리 더위를 피해보려 해도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날에도 냉장고에 둔 수박은 꾸밈없이 위로해 준다.     

안녕달 그림책 <수박 수영장> 한 장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수박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기분이다. 

“정말 수박 수영장에 빠지고 싶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내 진심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책장을 열어 특별한 수영장을 만난다. 선명한 초록과 붉은색으로 구분되는 그림 속에서 수박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여름을 시원하고 행복하게 경험한다. 논에서 일하던 어르신과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려는 동네 아주머니의 짧은 대화는 일상을 잠깐 멈추고 돌아보게 한다. 같은 날이라고 힘들다고 투덜대기보다는 그것을 오롯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깊은 마음이 담겼다.      


종종 그림책 작가들의 상상력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깊은 통찰력에도 감동한다. 페이지 마다에는 작가의 깊은 숨소리가 스며있고 글자로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내가 알던 그곳이 다르게 해석되어 나를 반긴다. 수박 수영장은 여름을 잘 지내라는 응원 같다. 그저 덥다고 몸이 힘들다고 탓하지 말고 생각에 따라서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언제나 시간은 흐르고 이별해야 하기에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도 말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면 수박 수영장을 읽는다. 보고 또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느낌이나 장면이 들어온다. 앉아있는 자리에서 푹푹 찌는 한낮 소나기처럼  행복한 여름을 마주한다. 먹는 수박보다 책을 더 곁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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