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부엌을 나눈 일요일
혼자보다 함께 하면 즐겁다. 시작은 기꺼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한 끼의 밥을 만들어 먹는 일도 그랬다. 일요일은 종일 먹는 일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끝날만큼 쉼 없이 먹거리를 준비한다. 지난주에 소홀했던 마음을 다잡고 잘해야지 하다가 오래가지 못하는 건 혼자 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나섰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점심으로 뭘 먹을지를 얘기했다.
“오랜만에 떡볶이 어때? 거기에 김말이 튀김도 같이할까?”
소파에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있던 큰아이가 맞장구를 친다.
“좋아. 그럼 내가 김말이 만들게.”
들을 때만 해도 그냥 지나는 말이라고 여겼다. 점심이 가까워진다. 움직여야 할 때임을 알고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당면을 물에 불린 다음 삶았다. 김을 꺼내고 김말이 만들 준비를 하는데 큰아이가 다가온다. 정말 해볼 요량인지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엄마, 내가 김말이 말 테니까 엄만 다른 거 준비해요.”
아이가 도마를 들고 나섰다. 김을 올리고 삶을 당면을 놓은 다음 돌돌 말기 시작했다.
붉은 흙이 채 마르지 않은 올망졸망한 감자를 사 왔다. 감자튀김도 더하기로 했다. 연한 감자 껍질을 칼 없이 천연 수세미로 쓱쓱 문질러서 벗겨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감자를 씻고 손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껍질 옷이 사라진 감자는 세수 한 번으로 말끔해진 아이 얼굴 같다.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밀가루 옷을 입히고 튀김 반죽에 퐁당 빠트렸다. 먼발치서 만화 보는데 푹 빠져 있던 막내도 함께 거들었다.
“엄마, 나도 김말이 만들래.”
언니가 하는 걸 보니 없던 마음이 생겼나 보다. 둘이 주고받으며 만들었다. 순식간에 김말이 완성이다. 이제 튀김옷을 입히고 튀겨내면 끝이다. 집안에 기름 냄새가 서서히 퍼져나간다. 오랜만에 튀김을 했다. 김말이는 반죽 색이 적당히 진한 노랑을 보일 즈음이면 건져냈다. 감자는 속살이 익어갈수록 투명하다. 어느새 그릇마다 튀김이 가득 담겼다.
떡볶이를 만들 차례다. 떡볶이는 함께 할 수 있는 재료가 무궁무진 하기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받는다. 떡에 어묵과 비엔나 햄을 넣었다. 멸치 육수에 고추장을 풀고 떡을 넣은 다음 끓기 시작하면 나머지 재료를 넣는다. 여기에 설탕을 조금 더하고 진한 국물이 만들어지도록 15분 정도를 중간 불로 두면 된다. 튀김과 함께 어울려 먹을 것이기에 충분한 국물을 확보하는 것도 떡볶이의 하이라이트.
따뜻한 튀김과 떡볶이의 만남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는 없다. 맛있다는 감탄사가 이어지면서 부지런히 먹었다. 혼자 하는 밥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젓가락을 들어 떡을 먹는데 쫄깃하고 달콤하며 맛나다. 국물에 김말이를 콕 찍어 먹으니 떡볶이의 매콤하면서도 끈적한 맛이 당면이 스며들었다. 이 맛이었다. 짜지도 심심하지도 않은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한 끼를 함께 만들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이들은 그저 짧은 놀이처럼 김말이를 만들었다. 기본 준비는 내가 했지만 김 안에 꼭꼭 당면을 채운 건 아이들의 야무진 손끝이었다.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반으로 줄었다.
음식은 추억이 있어 더 생각난다. 종종 엄마가 해준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더불어 작은 무엇이라도 도왔던 나를 떠올릴 때면 그때의 풍경이 선명하다. 마늘 껍질을 벗기는 일부터 음식이 눌어붙지 않도록 주걱을 들어 저었던 일, 설거지까지 옆에서 무언가를 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의 부엌은 언제나 정신없었고, 고사리 아기 손이라도 필요했던 상황은 자연스레 나를 그 공간으로 이끌었다.
전업주부인 엄마는 당연히 집에 있고 때에 맞춰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내 온다. 그러다 가끔 엄마와 도마를 서로 나누어 사용하는 날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일요일은 내가 특별함을 고민하듯 아이들 역시 그런 하루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날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만들어 준 여느 한때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귀찮다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라도 딩동 하고 벨을 눌러 맛있는 반찬이 들어있는 가방을 놓고 갔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널브러져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며 누군가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갑작스럽게 우리 가족을 초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점심은 이런 그동안의 바람의 소박한 현실 모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