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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22. 2022

오징어 튀김과 일탈

  

저녁을 준비하다 갑작스럽게 오징어 링 튀김을 만들었다. 지난 토요일에 장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오징어를 사 두었다. 언제부터인가 묵혀두었던 오징어 튀김에 대한 강한 욕구가 나도 모르게 이끈 행동이었다. 냉장고를 지날 때마다 냉동실에 둔 오징어가 생각났지만 요리할 생각은 없었다. 날은 흐리거나 뜨거웠고, 여기에 습한 기운은 뜨거운 불 앞에 서는 걸 망설이게 했다.     


목요일에 뜻밖의 오징어 튀김은 내 스트레스 정도를 보여주는 가늠자였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오히려 일에서 멀어지려는 경향이 있다.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될 빨래를 하거나, 옷장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나간다. 불안한 마음이 커갈수록 딴짓을 한다. 몇 시간 동안의 일탈 후에는 결국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냉동된 오징어를 한두 시간 전에 꺼내 두었다. 자연해동 과정을 거치고는 씻어서 물기를 빼고 밀가루 옷을 입혔다. 튀김가루도 없어서 부침가루에 달걀 하나를 넣고는 반죽을 만들었다. 솔직히 부침가루와 튀김가루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동글동글 오징어를 반죽에 넣고 다시 튀김가루를 살짝 묻혀주었다. 어느 요리책이나 잡지에서 봤음직한 튀김을 흉내 내고 싶었다.     

오목한 팬에 기름을 적당히 붓고 튀겨내었다. 딱 한 끼 온 가족이 서너 개 정도 먹을 만큼 만이었다. 음식을 할 때 언제나 양이 적으면 힘이 덜 든다. 튀김은 불 앞에서 지켜봐야 하기에 여름날에는 적당히 하는 게 지혜롭다.     


내가 만들었기에 제일 먼저 뜨거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그동안 그리도 기다려왔던 것인데 감동이다. 그렇게 3개를 먹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인 일이었다. 반죽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혼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먹고 싶어서 한 일이었지만 일이 밀린 까닭에 몇 분도 아쉬워하면서 오징어 튀김을 만든 내가 이상했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오징어 튀김의 여운이 얼마 동안 남아 있었다. 눅눅한 날씨에 고소하고 아삭했던 느낌은 점점 쳐져 가는 내게 뜻밖의 여유를 주었다. 적당량만 먹어선지 몇 개 더 먹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만족감을 전했다.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는 나를 나무라는 일이 많다. 생각만큼 일이 더딜 때 내 앞에 놓인 일들에 짜증을 내고 아이들에게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는 힘들 땐 무조건 걷는다고 하는 말이 생각났다. 난 그냥 먹고 싶은 걸 요리하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얼마 전부터 열심히 보다는 즐겁게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전자는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서 피로감이 크다. 스트레스는 몸을 힘들게 하고, 꾸준히 하고 싶은 일도 멈춰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떻게 결론 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아 있으니 즐겁게 하고 싶다. 지금 해야 할 일보다 좋아하는 것을 무심코 해놓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 오징어 튀김은 휴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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