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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25. 2022

엄마의 멸치 내 멸치

음식의 기억


    

여름이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마늘과 풋고추를 넣어 만든 멸치볶음이다. 언제부터 이걸 좋아하게 되었을까? 딱히 떠오르는 시기가 없으니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5~6년 전인가 싶다.     

 

어릴 적 엄마는 밑반찬을 만들어 두기보다는 바로 몇 가지를 만들어서 밥상을 차렸다. 그럼에도 종종 올라오는 건 멸치볶음이었다. 그 시절 엄마가 만든 멸치 반찬은 눅눅했고 그리 손이 안 갔다.    

  

멸치는 도시락의 단골이었다. 여름이면 열무김치에 멸치볶음, 계란말이가 종종 등장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까? 지금처럼 반찬통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김칫국물이 멸치로 번져 그야말로 얼굴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집에서도 그리 바삭하지 않았던 멸치는 붉은 국물을 머금어 급기야 멸치 김치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옆에 있는 친구의 멸치는 윤기 나고 달콤해 자꾸 손이 간다. 내 반찬통에 있는 것을 손으로 가리고 싶을 만큼이었다. 내 것은 여름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어 축 늘어져 활기 없는 이의 모습과 닮았다.  

    

그때부터 난 멸치 반찬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굵기에 물기 없이 잘 조려진 경우는 손이 갔지만, 이상하게도 엄마의 멸치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았다. 자취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직접 만들기도 했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때마다 멸치볶음이 고수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내 스타일 멸치볶음

나도 엄마가 되었고 어느 날 멸치에 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함께 했더니 맛이 달라졌다. 마늘의 향이 멸치의 비릿한 맛을 잡아주었다. 평소에 먹는 음식들의 간이 강하다는 생각에 멸치 자체에 있는 소금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멸치가 아주 심심할 경우만 간장을 추가했다. 멸치를 먼저 마른 팬에 볶았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을 다른 그릇에 담아두고 팬에 식용유를 넣고 마늘을 볶았다. 마늘 향이 나기 시작하면 멸치를 넣고는 매실청이나 요리 당을 조금 더했다.      


이제야 건강한 멸치를 만나는 기분이다. 맛은 괜찮았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색을 찾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이맘때면 어느 밭이나 일렬로 늘어선 고추밭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갛게 익어가거나 초록의 풋고추 역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시절이다.     

 

고추를 더하기로 했다. 매운 청양고추면 먹기에 불편해서 피하지만 오이 고추나 비타민 고추 등 일반적인 고추는 살짝 매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아삭함이 식욕을 자극한다. 고추는 편한 대로 어슷 썰기를 했고 마늘이 조금 볶아지면 넣어서 간장을 더하고 중간 불에 다시 볶았다. 조금 숨이 죽으면 멸치와 휘리릭 섞어주면 볶음이 완성이다.     


멸치와 마늘, 풋고추 삼총사가 함께하는 이 요리는 여름에 내가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다. 멸치의 고소함과 마늘의 달콤한 부드러움, 초록의 맛 고추는 서로가 적당한 하모니를 만든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삭함보다는 거칠지 않을 정도다. 멸치에 다른 야채들이 어울려 풍부한 맛을 만든다.       


어릴 적 엄마의 멸치볶음에 대해 반감을 품었던 건 내가 바라는 세련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축 늘어진 멸치와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집에 멸치의 맛을 좌우할 수 있는 물엿 같은 조미료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확신이 들었던 건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친정에서 먹었던 엄마의 멸치 반찬 때문이었다. 상에 오른 화려함마저 느껴지는 그건 초등학생 시절 먹었던 멸치가 아니었다. 아몬드와 호두, 땅콩에 마늘, 붉은빛 도는 마른 새우까지 들어간 품격 있는 멸치볶음이었다. 

“엄마 이거 엄마가 한 거야? 정말 맛있다!”

엄마는 몇 번을 멸치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는 나를 보며 놀란 눈치다. 엄마는 당연히 자신이 만들지 누가 했겠냐며 별소리를 한다는 눈치다.     


이제는 나만의 멸치볶음 스타일도 탄생했다. 옛날 엄마의 멸치도 사라진 지 오래다. 어찌 보면 그때 엄마의 멸치 반찬은 밭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해야 했던 워킹맘의 삶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렵지만 가족들에게 무엇이라도 만들어서 내놓아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과 많은 것을 갖춰놓고 살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의 단출한 삶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싸해진다.      


식탁의 풍경은 시간과 요리하는 이의 마음, 삶의 환경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다. 내가 멸치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랬다. 내 기억 속의 음식을 꺼내 보면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일상이 많이 담겼다. 엄마의 삶도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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