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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27. 2022

브런치 사건

감정을 나누는 일, 그 어려움에 대해



아이와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일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크게 마음먹었지만 어쩐지 가는 게 불편하다. 편하게 입은 옷을 갈아입고 후텁지근한 날씨를 뚫고 나가기가 싫다.     


여름날 외출은 처음에는 반갑지만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힘이 빠진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 지금의 내 사정은 잠깐의 외출은 멀리해야 할 일 같다. 

“오늘 거기 갈 거야?”

“글쎄? 엄마는 어떻게 할 건데?”

“네가 간다고 하면 가고.”

아이와 아침에 몇 마디 주고받다가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가자고 할 마음이 없으니 내 눈치를 보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생각해보고 말할게요.”

아이는 뭔가 애매한 상황이면 언제나 이 말을 던진다. 내가 꺼냈으니 아이가 가겠다고 하면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 우리 집에서 먹을까요?”

“그래 우리 그럼 집에서 브런치 스타일로 먹자. 어제 사 온 단호박에 치즈 올려서.”

아이는 다음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때 갑자기 난 집에서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핫케이크를 떠올렸다. 아이가 동네 마트에서 핫케이크 가루와 소시지도 함께 먹기로 하고 사 왔다. 반죽하는데 내가 우유와 달걀 하나를 깨뜨려 주었다. 아이는 잘 저은 다음에 팬에 버터를 녹이고 반죽을 적당량 부었다. 아이는 뒤집는 과정이 걱정스러운지 불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윗면의 수분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자 주걱을 들어 뒤집으려는데 반죽이 으스러질 그것 같아 멈칫한다. 옆에서 소시지를 데칠 준비를 하던 내가 나서서 도왔다.   

여러 마음이 담겼던 여름날  브런치 

  “엄마, 미안해요. 내가 만들려고 했는데….”

난 별생각 없이 도와준 일이었는데 아이의 반응이 컸다. 얼굴은 좀 긴장된 듯했다. 순간 내가 가만히 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을 차리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 혼자 하도록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에 거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 알아서 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 같았다. 그렇게 핫케이크를 만드는 동안 세 번 정도를 도와주게 되었다.

“내가 하려 했는데 엄마가 다 만들어버렸네…”

아이의 짧은 말속에서 실망이 묻어 나왔다.    

  

아이는 내가 데쳐놓은 소시지를 구웠다. 난 아침에 쪄 놓은 단호박에 치즈를 올려 살짝 구웠다. 접시를 꺼내어 올려놓는 건 아이의 몫이다. 파프리카 샐러드에 황금색 방울토마토까지 더하니 그런대로 소박하지만 괜찮은 브런치가 완성되었다. 


앉은뱅이 상을 텔레비전 앞에 펼쳐놓고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달콤한 핫케이크와 아삭한 샐러드의 조합은 괜찮았다. 열심히 먹던 아이가 또 말했다.

“엄마, 내가 오늘 점심 만들려고 했는데 엄마가 다했네.”

“같이 먹는 거니까. 혼자서 하면 힘들어.”

가능한 한 편안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불편한 마음이 시작되려고 했다.   

   

진심으로 바쁜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방학이기에 여유가 있는 아이에게 며칠만 집안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계속해서 내 손을 빌리는 일로 혹시 혼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먼저 보호막을 치는 건 아니었는지 아리송하다. 어찌 보면 아이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몇 번이고 혼자 해내지 못했음을 얘기하는 건 나도 몰래 아이에게 불편한 마음을 보내서 그런 건 아닐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상황에서 잘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왜 아이에게 어떤 마음으로 미안함을 전했는지 묻지 못했을까? 아이의 얘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브런치는 가끔 시간을 내 맘대로 쓰고 싶을 때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혹은 날카로워진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접시 안에 여러 가지를 올려두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내가 바쁜 건 내 일 때문인데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음을 던진다. 아이가 엄마에게 점심을 준비해 주겠다고 약간의 억지를 부리고 했던 것도 이와 연장 선상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은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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