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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08. 2022

복숭아를 즐기는 유연한 방법

여름과일 맛있게 먹기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여러 과일과 만나는 일은 즐겁다. 봄부터 하우스 참외가 나오는데 엄밀히 말하면 참외는 여름 과일이라는 꼬리표를 뗀 지는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참외를 보면 여름을 생각한다. 5월 하순이면 수박을 먹고, 6월 중순부터는 플럼 코트라는 자두와 살구를 적당히 섞은 새로운 것에 손이 간다. 요즘같이 무더운 8월에는 복숭아와 포도가 한창이다. 과일을 사는 일은 대부분 내 손을 거치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때로는 식구 중 누군가가 먹고 싶다는 한마디가 가장 강력한 과일 선택의 기준이 된다.   

    

장바구니 물가가 비상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듣는다. 언젠가는 마트에 오랜만에 갔다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오른 가격에 너무 놀랐다. 웬만해선 가격에 반응하지 않는 내가 보인 반응은 스스로도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시장을 볼 때면 조금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에도 과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여기고 있었던 내게 지금의 상황은 심각했다.     


7월 초입에 가족과 함께 가까운 숲에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자동차로 한 10분 가는 거리였기에 나들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한 시간 정도의 잠깐의 외출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자고 남편과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 복숭아 먹고 싶어.”

뒤에 있던 아이가 불쑥 꺼낸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는 잠시 망설였다. 아직 복숭아 출하가 활발하지 않은 때라 가격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때 마침 길거리에 복숭아 축제라는 플랫카드를 건 과일 노점이 보였다. 만원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천도복숭아 조림 

차를 세웠다. 최근에는 노점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는데 가격이 자꾸 당긴다. 혼자 내려 아줌마에게 물으니 천도복숭아는 한 봉지에 만원이라고 했다. 솔깃한 가격이다. 양도 상당해서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정도다. 한번 맛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얼른 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그 후로 한 며칠은 열심히 먹었지만, 언제부턴가 시들시들해졌다.    

 

아이와 저녁 운동을 나섰다. 

“엄마, 복숭아 조림도 맛있는데.”

함께 걷던 아이가 먹고 싶은지 한마디 한다. 뭐 그리 어렵겠냐며 집으로 돌아가서는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가끔 신 과일을 만나면 해 먹는 음식이었다. 설탕만 있으면 가능해서 무엇을 만든다고 할 수도 없다. 냉장고에서 남아 있는 천도복숭아 3개를 꺼냈다. 예상대로 상태는 아삭한 싱싱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무른 부분을 도려내고 대충 썰었다. 복숭아를 냄비에 넣고 설탕을 적당히 뿌린 다음, 강한 불에서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20분 정도 졸인다. 언제나 과일 조림은 시원하거나 열기가 가신 후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밤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에 두었다가 하나를 꺼내어 먹었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부드러움이 예상대로 성공이다.      


복숭아에 작은 변화를 주었을 뿐인데 새로운 것이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파인애플 농사를 지었는데 여름 무렵이면 이런 조림을 만들었다. 그것을 먹으면서 과일 조림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덜 익었을 때 맛을 보완하려는 방법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을 먹고 아이에게 노란색 복숭아를 한두 개 접시에 올리고는 포크로 콕 찍어서 갖다 주었다. 

“엄마, 정말 만들었어?”

아이는 생각보다 빠른 엄마의 움직임에 놀란 눈치다. 가끔은 음식을 만드는 일처럼 모든 게 조금의 변화만으로 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고, 상대방의 감정을 즉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요리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설탕을 만난 복숭아는 더욱 투명해졌다.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은 유연 해지는 게 어렵지 않다. 다른 일들에도 그런 마음이 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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