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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4. 2022

여름의 한가운데서
그리던 공간을 만날 때

이니스프리 하우스와 이런저런 생각들

   

이니스프리 하우스

내가 그려왔던 공간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예전엔 몰랐던 것들을 이제야 알게 되고 바라보았다. 어느 잡지에서 봤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초록의 식물들과 길게 놓인 원목 테이블, 멀리 보이는 초록의 차밭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 7월이 마지막을 달려갈 즈음에 제주 이니스프리 하우스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나섰는데 벌써 주차장에는 차들이 꽉 들어차 있다. 햇살은 종일 얼마나 뜨거운 날을 선물하려는지 극성이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푹푹 찐다. 얼굴은 절로 찡그려지고 걸음이 바빠진다. 빨리 건널목을 건너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그곳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곳은 그저 잠깐 멈춰있는 듯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이 지붕을 식혀주고 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곳은 안과 밖이 철저히 구분되면서도 함께한다. 이니스프리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다른 일상은 잊었다.    

  

물론 이곳은 이니스프리라는 화장품 브랜드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업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관련 제품이 판매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공간을 구성하는 초록의 식물들과 허브, 제주의 자연을 곳곳에 담고 있는 풍경은 그런 사실을 잊게 한다. 잘 알고 있지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  

    

자연스럽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오래 머물고 싶다. 억지스럽지 않으니 즐겁다. 다시 오고 싶어질 만큼 상쾌하고 여유가 찾아온다. 한라산 케이크와 음료를 시키고 가족들과 먹으며 생각했다. 난 왜 이리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할까? 그건 아마도 내가 살고 싶은 일상의 공간 일부분을 충족시켜주기 때문 아닐까 싶다.     


높은 천장에 대나무로 만들어진 바구니에 식물이 매달려 있다. 통창으로 차밭과 숲, 나무들이 다른 장소에 있지만 공유되는 느낌이다. 창을 열고 나가면 너무 뜨거운 날씨지만,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여름의 청량하고 시원한 분위기다.      


요즘 들어 공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예쁘게 꾸민 곳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자연이  공존하는 곳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아파트에선 생각만큼 식물을 키우는 게 어렵다. 숲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제약이 너무 많다. 그런 것들이 이곳에선 절로 이루어진다. 온전히 땅을 터전으로 삼아 사는 것들이어서 가능하다.     

남편은  책 한 권 읽으며 종일 머물고 싶다고 한다. 난 누군가와 수다 떨거나 글 쓰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서 산책하다 큰 나무 그늘에 서면 계절을 잊는다. 덥다는 말은 사라지고 내게 머무는 바람과 나무의 향에 취한다. 안에서 느꼈던 에어컨의 인위적인 시원함 대신 여름의 한가운데서 이리도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편으론 내가 머물고 싶은 장소 역시 비용을 지불하고 지내야 한다는 게 어찌 보면 안타깝다. 물론 내가 사는 집에 그러한 요소들을 심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될 때가 많다. 꾸준히 유지하고 가꾸는 일은 더 힘들다. 식물을 들이고, 그림을 걸고, 청소해서 공간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계속해서 품고 사는 일은 가능한 듯하면서도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풍선 같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건 이런 바람을 실현하는 일이다. 가끔 큰마음을 갖고 떠나는 여행이나 동네 카페, 작은 책방, 예쁘게 꾸민 소품 가게를 어슬렁거려보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고 보니 모두 다 소비가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충분한 기쁨이나 휴식, 때로는 일상을 뒤로하는 환상이 내 주변에 머물기에 그리 아깝다는 생각은 없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발을 내딛는 순간 잠깐 현실의 삶이 다가오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어릴 적부터 생각이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과수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잘린 나무에 기대어 사는 초록 담쟁이가 예뻐서 집으로 가져왔다. 물꽂이를 할 수 있는 병도 마땅치 않았기에 떠올린 것이 할머니가 쓰던  옛날 도자기 국그릇이었다. 그곳에 물을 담고 잘린 나무 가지를 얼마 동안 방안에 두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모두가 초록인 시골에 자랐지만 내가 잠자는 곳으로까지 살아있는 그것을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여전히 안고 산다. 거실이나 주변에 식물들을 두고 있으니 절반은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정말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 땅에 뿌리를 두고 사는 그들을 만나면 더 감격한다. 제주의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에는 오묘한 신비감이 머문다. 야생과 한편으로 다정다감함 같은 게 있다. 내 고향이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과수원에서 여름날의 쉼터였던 퐁 나무를 이곳에서 만났다. 다른 가족들은 모르는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는 몰랐던 나무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니스프리 하우스는 다시 돌아보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있는 제주다운 나무들이 전체를 살아나게 한다. 공간 조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었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잘 정비되어 숲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있어서 그 공간 안이 빛날 수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건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 딱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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