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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3. 2022

햇고구마

가장 쉽고 편하게 행복해지기


     

여름이 마지막 기운을 쏟아부으려 하는 날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사이에 뜨거운 태양의 에너지를 느낀다. 그럼에도 가을이 찾아오는 중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그보다 더 다정하게 가을을 생각하게 하는 건 로컬푸드에 나온 야채들 때문이다.   

  

아직은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주먹만 하던 호박이 이제 어른의 머리만 한 것까지 제법 자랐다. 그보다도 반가운 건 고구마다. 일 년 내내 만나는 게 고구마이지만 지금 이때의 고구마가 눈에 들어온다.      

햇고구마가 모였다

맑은 보라색 빛의 연한 껍질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올망졸망한 크기의 것들이 마음에 든다. 깨끗이 세척된 고구마는 땅의 싱그러운 기운이 아직 조금 남아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제법 알이 굵은 고구마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면 느끼기 어려운 햇고구마에 대한 설렘이다.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로컬푸드로 향했다. 지난주에 사다 놓은 고구마는 주말 동안 다 먹었다. 아침부터 농사지은 것들을 내어놓은 농부들이 마트를 찾는 시간이다. 가보니 내가 기다리던 고구마가 여러 봉지가 차곡차곡 쌓였다. 무엇을 살까 망설이다 양배추도 한 통 에코백에 담았다.     


주말부터 음식을 먹는데 목 넘김이 불편하다. 워낙 예민한 체질이라 조금이라도 달라진 몸 상태에 초집중하는 나다. 주말을 보내고 망설이다 병원에 갔더니 식도염 같다고 한다. 내 생각도 그러하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반응이 아닐까 싶었다.      


이럴 땐 자극적인 음식 대신 부드러운 것들을 찾게 된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것도 없다. 적당히 달콤한 고구마를 쪄서 먹는 게 제격이다 싶었다. 집에 오자마다 5개를 씻고 찜통에서 쪘다. 아직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것 하나를 먹어보았다. 익숙한 맛이지만 입에 넣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하지 않아도 항상 이런 기분을 전하는 게 고구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 늦여름의 고구마는 더욱 그랬다. 

    

햇고구마는 굽기보다는 더운 날이지만 뜨거운 습기를 머금으며 익은 찐 고구마가 제격이다. 아직은 무덥고 고구마에도 힘이 덜 들었다. 그저 순한 모습이다. 이럴 때 촉촉한 맛을 유지해주는 데는 찌는 요리법이 어울린다. 그러다 옷을 껴입는 추운 계절에는 온기가 오래 머무는 군고구마를 찾을 테지만.       

하루를 즐겁게 한 찐 고구마 

찐 고구마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오가는 길에 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편하게 먹을 생각이다. 여유 없던 일상의 휴식을 고구마를 먹으면서 가져야겠다.      

몸이 별로 일 때 먼저 신경을 쓰는 게 편안하게 해 줄 먹거리다. 천천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지금은 고구마 만한 게 없다. 가끔 이 작은 고구마 하나에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일에서 행복은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만족할 수 있다는 것. 고구마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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