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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20. 2022

낯선 동네, 이상한 시선

바라보는 일의 어려움


 

약속이 있어 낯선 동네에 들어섰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아침에 갑자기 잡힌 일이라 장소를 네이버 빠른 길 찾기에서 먼저 살폈다. 길눈이 밝지 않은 내게 지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저 가다 보면 알게 될 거라는 막연함이 머물렀다.     


살아가는 일은 좋거나 그렇지 않은 것들의 반복 같다. 더운 여름에는 벗어나고 싶다가 갑자기 선선해지니 기분은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천천히 가을이 왔으면 했다. 그러다 갑자기 여름을 연상시키는 날씨는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목적지를 입력하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걸었다. 안내에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을 만큼 길 찾기에선 까막눈이라고 여겼다. 어찌어찌 정신을 집중해서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후 2시 약속이었는데 문이 꼭 닫혔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포근함이나 소박함, 다정함 등의 끌림은 없었다. 그저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도로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가로수를 이룬 길이었다. 20분 정도 늦는다는 연락을 받고는 별 할 일이 없어서 걸었다. 그저 집을 벗어나 완전한 이방인으로 기웃거렸다. 그렇게 5분을 걸었을까?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꽤 큰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규모에 비해선 다가오는 에너지가 없다.    

 

바로 옆 공원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떤다. 휠체어에 의지한 아저씨는 살짝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지나는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본다. 대충 봤지만, 오후 두 시 무렵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젊은 듯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기에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이상했다. 그때 무슨 아파트인지 브랜드가 궁금했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꽤 시간이 흐른 시영아파트였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아마도 일찍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아 젊은 한때를 보냈거나, 아이들이 떠나간 큰 집 대신 단출한 삶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 온 이도 있을 듯했다. 아니면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택해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색안경을 끼고 주변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했다. 

     

추석 연휴기간에 온 가족이 시댁과 오빠네를 다녀왔다. 지방에 살고 있기에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아이들은 도시의 화려함에  항상 탄성을 지른다. 하늘로 솟아오른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부러움 섞인 한마디도 빼놓지 않는다. 그때마다 조금 미안해지고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저곳에 산다면 어떨까? 어느 부분에선 행복하겠지 하고 생각하다 멈춘다.     


그리고 사나흘 지난 후의 일이었다. 다시 다른 공간에서 아파트의 외관과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내 큰 착각인지도 모를 시선은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게 아니었다.  단편적인 느낌으로 뭉쳐져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런 생각에 걷다 보니 벌써 길에는 은행이 떨어져 있었다. 그 특유의 향이 곳곳에서 진동해 온다. 어느 누가 그곳을 밟고 지났는지 짓이겨진 흔적이 가득하다. 내가 그곳을 지나갈 무렵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은행이 떨어진 곳을 피해 갔다.     

왠지 그 모습을 끝까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줍고는 집으로 가져가 흐물거리는 겉껍질을 깨끗이 씻어내고 은행알을 마련할 이를 위한 조심스러움과 한편으로는 잘 지나야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불쾌한 냄새를 풍기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얼굴도 잘 모르는 할아버지의 은행나무길을 걷는 모습에서 이 동네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었다.

그리고 약속 시각이  되어 발길을 되돌려 가다 보니 평상에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렴풋이 보이는 게 늦은 오후에 간식을 모여 나누는 것 같았다.     


웃음소리도 나지막이 흐르고 무언가 열심히 얘기를 주고받는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편안하고 즐거운 한때였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만나기 어려운 정겨운 풍경이었다. 직전까지 높은 아파트 숲에서 활력이 없다 여겼다. 더불어  잘 알지 못하는 공간에 대해 나만의 편견의 탑을 쌓아 올린 잠깐이었다.   

  

주거 공간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위치와 삶의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로 해석된 지 오래다.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타인의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이런 과정은 타인과 비교를 통한 위안 찾기나 헛헛해짐을 마주하는 결과로 이어질 때도 종종 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삶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대한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묘한 내 시선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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