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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12. 2022

택배의 귀향

남 탓했는데 결국…


 

전화가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스팸이려니 하고 무시하려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망설이다 받아보니 우체국이라고 했다. 지난 금요일에 보낸 택배가 반송되었다고 했다. 안에 있는 무엇이 터졌는지 포장 상자가 다 젖었으니 찾으러 올 수 있느냐는 것. 내가 가야 하는 상황이다. 오후 정도에 간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서울로 보낸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배송되었다는 알림 문자가 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것이 없다. 카톡으로 날아온 영수증에 택배 운송장 번호를 클릭해 보니 서울에는 도착했지만, 아직 배송 전이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연휴가 겹쳐서 물량이 폭주했다고 여겼다. 화요일 아침이면 도착하겠지 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다시 그것이 돌아왔다는 것. 그것도 상자가 다 망가졌다니 안에 있는 것은 어찌 되었는지, 마음을 써서 주말에 먹으라고 보낸 것이었는데 이렇게 결론이 나니 화가 났다.          

택배 상자에는 동생에게 보내는 김치와 밤 조림이 들었다. 동생은 언제나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마음을 쓰는 소중한 이다. 날이 쌀쌀해지니 더 마음이 쓰이던 참이었다. 사 먹어도 괜찮은 게 김치지만 그래도 내가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주 가끔 보내지만, 요즘은 잊고 살았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보내야겠다고 떠올렸는데, 금요일 오전에 갑작스럽게 결정하고는 순간에 만들어서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택배를 받았을 때 동생의 얼굴을 그려보는 거 하나로 김치를 만들고 포장해서 보내는 번거로움은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 공중으로 허망하게 날아갔다. 택배 상자가 배송 중에 파손되는 일에 대해선 들은 적이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불편하고 기분 상하는 일이 되었다.   

  

우체국으로 가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상자는 아주 많이 찌그러져 쓸모없게 되었다. 한눈에 봐도 물기를 한껏 머금은 상태였다. 직원이 택배에 담았던 물건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김치와 밤을 싸고 있는 포장지는 상하지 않은 그대로여서 다행이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내가 재활용 종이 아이스팩을 보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추석에 누가 선물을 보내면서 함께 동봉한 것이었는데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당연히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왔으니 터질 일이 없었다. 지금은 종이상자라는 것을 내가 잊고 있었다.      


처음엔 우체국 측에서 보상해준다고 통장 사본을 갖고 오라고 했다. 복사해 둔 것이 없으니 통장만 들고 갔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잘 챙기지 못해서 일어난 실수였다. 혼자 붉으락푸르락 속을 끓였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잠깐 망설이다 다시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이것저것 다시 넣고 보내려고 했지만 그럴 기운도 없다. 우선은 다시 우체국에 온다는 게 귀찮았다. 우체국 직원이 혹시 모른다며 작은 스티로폼 상자와 생수 얼린 것을 아이스팩 대용으로 챙겨주었다. 생각 외로 꼼꼼히 챙겨주는 직원의 모습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동 과정에서 자신들의 부주의도 있으니 택배요금은 우체국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그것으로 택배 반송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탈했다. 상황을 정확히 몰랐을 때는 우체국 탓만 했다. 그동안은 매일 다음날 배송되는 게 당연했다. 이번에는 왜 안 그런 지부터 얼마나 험하게 다뤘으면 상자가 터질까 등등 나만의 시나리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게로 향해야 할 잘못이 타인을 겨냥한 꼴이었다. 대부분 일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간단한 명제를 또 잊고 있었다. 나를 보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다른 대상으로 문제의 핵심을 이전해 놓고 감정적으로만 접근해 제대로 보지 않으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소위 ‘남 탓’은 제일 쉽고 간단하다.      


혼자 몇 분 동안 씩씩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결말을 예정 지어 놓았다. 또 하나를 배우고 간다. 모든 일에서 다 좋거나 나쁜 건 없다는 게 오늘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상황을 살피는 일, 마음보다 이성이 내달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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