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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9. 2022

카페의 특별한 활용법

아이와 함께 카페로 출근하던 날 


  

막내와 동네 별 다방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혼자 집을 나서고 싶었지만, 어제부터 아이가 졸랐다. 그냥 차를 마시러 가는 길이 아니었기에 몇 번이고 말렸다. 최소 한 시간 이상을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걸 견딜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가능하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막내는 늦잠이 일상인 아이였다. 주말에는 오전 9시를 넘긴 시간까지 잠을 잘 정도로 잠자는 걸 좋아한다. 매일 그때마다 어떻게 저리도 오랫동안 잘 수 있지 하는 궁금증과 동시에 부럽다. 난 예민한 탓인지 언제나 일찍 깬다.    

  

새벽부터 KTX를 타거나 공항으로 가는 길, 먼 곳으로 떠나는 날에는 잠에 인색한 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 외는 그다지 좋은 게 없다. 아이는 큰 결심 탓인지 깨우지 않아도 7시 10분 정도에 일어났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아침을 먹고 카페에서 해야 할 것을 챙긴다. 매일 푸는 수학 문제집과 한자 학습지, 학교 과제를 위한 수학책을 에코백에 넣었다.   

   

아이는 살짝 들떠있다. 종종 카페에서 케이크나 차를 마셨지만 내가 일하는 시간에 함께 한 적은 없었다. 혹시 아이가 일찍 집에 가자고 조를 것 같아 심심해지면 혼자 집에 가야 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로로 길게 놓여있는 탁자에 서로의 짐을 놓았다. 무거운 노트북을 내려놓고 음료를 주문했다. 아이는 초콜릿 라떼를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로 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테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 카페로 향하는 길에 아이는 하늘을 보더니 양떼구름이 너무 예쁘지 않냐며 물었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무겁게 느껴지는 가방만큼이나 일에 대한 압박감이 몰려온 탓이다.   

  

어제 하다 마무리가 덜 된 자료를 다시 읽으며 정리했다. 살짝 아이를 보니 열심히 곱하기와 나눗셈이 들어간 연산을 풀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나 수학 다 풀었어. 카페 와서 하니까 집중이 잘 된다. 텔레비전도 안 보고 하니까.”     


아이는 스스로 흐뭇함이 밀려온 듯하다. 난 아직도 헤매는 중인데 아이가 뭔가를 끝냈다고 하니 부럽다. 아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산하고 끝내는 일이면 좋겠다. 순간 잡념들이 몰려왔지만, 다시 마음을 정리했다.      

아이와 아침부터 3시간 반 정도 별 다방에서 일했다. 집에서는 생각만큼 집중이 어렵다. 어느 정도 일의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선 능률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방황만 하다 끝난다. 집에 있는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는 까닭이다.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면 빨래를 널어야 하고, 설거지 몇 개가 놓여있는 것, 먼지가 보이는 마룻바닥, 물을 기다리는 식물까지 모두가 나를 찾는 기분이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하나라도 하는 순간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카페를 찾는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까닭에 딴짓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한다. 자유로울 것 같은 공간이 내게 주는 부자유가 정말 필요할 때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아이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보다. 평소에는 쉼 없이 말하는 아이의 입이 굳게 닫혔다. 오기 전날부터 카페에 가는 이유를 일하기 위함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조용한 곳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시끌벅적한 이곳에서가 몰입이 잘된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유로움이 내 정신을 붙들어 준다. 카페의 색다른 활용법을 아이가 배웠다. 동시에 시간을 견디어 내면 어떤 열매가 맺어지는지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아이는 챙겨 온 숙제들을 다 했다.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내 어린 시절, 처음 경험했던 여러 공간에 대한 기억은 중년인 지금에도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바탕이 된다. 한편으로 할 것을 다 한 아이가 부럽다. 나도 딱 아이만큼의 과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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