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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17. 2023

나를 돌본다는 것

연말과 새해 쉽지 않았던 날들


   

벌써 지난해 일이다. 조용히 지나려고 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게 사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처럼 당황스러웠던 적도 없다. 혹독하게 아팠다.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고 그렇게 연말연시를 보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대출 기간인 2주 동안 다 읽기 힘든 책 5권을 들고 오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고 언제나처럼 반납 일자를 며칠이나 넘겼다. 남편은 이런 나를 매번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책을 제날짜에 갖다 놓지 않는 일도 그랬다. 우연히 책장에 꽂힌 책을 본 그가 다시 도서관에 책을 갖다 줘야 한다고 서너 번 이상을 얘기했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시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며칠 전에 엄청난 눈이 내렸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곳은 말끔히 치워졌고 도로의 눈은 녹은 상태였다. 그렇게 안심했던 게 탈이었다. 일을 보고 도서관 현관에서 밖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애써 힘을 내어 일어났지만, 손가락이 왠지 이상했다.     


집에 와보니 붉게 조금씩 부어올랐다. 구부리는 일이 힘들 정도다. 소염제를 먹고 얼음찜질을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더 부었다. 다음날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손가락 인대가 늘어났어요. 수술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정확한 건 초음파를 봐야 할 것 같아요. 화요일 정도에 와서 살펴보세요. 깁스는 하고요.”

의사의 말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인대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정확하지만, 상태의 정도가 어떤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휴대용 손가락 보호기를 사서 끼웠다. 혹시 수술이라도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손이 아프니 기분도 그저 그랬다. 방에서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식구들의 점심은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아픈 몸으로 종종거리는 것도 싫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잠은 잠을 부르는 듯했다. 한두 시간 정도 자고 나서 집 안을 움직이다 다시 잠을 청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불안은 종종 또 다른 걱정을 키운다. 월요일에 다시 동네 병원에 갔다. 전에 갔던 병원에서 들었던 진단과는 달리 아주 간단했다.

“인대가 늘어났어요. 손가락 움직이는 일을 조심하고요. 물리치료받으세요.”

그제야 별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파라핀 치료는 작은 통에 담긴 파라핀 액에 아픈 손을 담갔다 굳으면 떼어내고 다시 담그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일주일을 꼬박 쉼 없이 다녔다. 확연히 상태가 좋아지는 건 알 수 없었지만 매일 아침 병원으로 가는 동안은 기분이 괜찮았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3주를 보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우울했다. 그날 그곳에 가지 않으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을 나무라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찾아오기도 했다. 남 탓하기는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음에도 퉁퉁 부은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랬다.      


내 손은 언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가끔 조금의 불편함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저 잠깐이면 지나갔다. 그러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몇 가지를 배웠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과 예상 밖의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태도다. 그저 가능한 것들을 해 가는 일이 가장 빠르고 편한 해법이라는 것.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는 멀리 둬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데 편도도 부었다. 상처가 났나 싶을 정도로 매우 아팠다. 병원에서 수액 처방을 받아 한 시간에 걸쳐 맞았다. 온몸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아픈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생강차를 마시고 손가락에는 알로에를 문질러가며 염증을 다스렸다.      


새해의 설렘이나 기대도 없는 날들이었다. 그저 어제보다 아픈 게 조금 더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다시 내게도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알았다. 회복속도는 더디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이불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항상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는 나이지만 내가 아픈 그 순간에는 난 오롯이 혼자였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직시하게 되었다. 너무나 평범한 진리가 내 마음속으로 안겨들었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나이가 들면서 경험한다. 그러다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잊고 살아가기를 반복하다 이렇게 깨우쳐주는 날이 있다. 그래서 의미 없는 하루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정말 힘들었던 하루도, 내게 무엇을 얘기해 주기 위해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때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 때 일상이 풍요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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