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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31. 2023

우리가 마주한 5시간

특별한 서울 여행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간간이 눈 날리는 일요일의 시작은 온 동네가 숨죽이고 있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정류장으로 갔다. 아직도 이런 열정이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KTX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단 몇 시간의 여정,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친구는 내가 기차를 탈 즈음인 7시 40분 즈음이면 공항으로 향하고 있을 터다. 어제까지 제주 날씨는 바람과 눈이 많이 내렸다는데,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운항하나 보다.     


11시 무렵에 우리는 만났다. 여의도역 3번 출구 입구에서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다.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하얀 다운점퍼를 입은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냥 웃었다. 

“빨리 왔네.”

서로를 보고 씩 웃는 수줍은 미소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5시 무렵이면 헤어져 다시 각자의 삶터로 돌아가야 한다. 난 용산역으로, 그는 김포공항으로 발을 옮겨야기에 중간지점으로 여의도를 택했다. <더 현대 서울>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기에 이른 점심을 먹었다. 중국과 멕시칸 음식이 있는 <SMT 라운지>에서 퀘사디아와 딤섬, 볶음면을 앞에 두었다. 평소 같으면 접시에 먼저 손이 갔을 테지만 그보다는 서로의 표정을 읽어가는 일이 앞섰다.     


한 공간에서 서로를 보며 목소리를 들으며 머물렀다. 둘 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친구는 워킹맘으로 살아간다. 방학이라는 여유가 찾아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달 초에 제주시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고 딱 2주 만이었다.     

https://www.thehyundaiseoul.com/hasisipark/


“우리 서울에서 꼭 만나자.”

여유 없이 2시간 정도를 만나면서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땐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마음을 다시 행동으로 옮기기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가까울 수 있지만 먼 곳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난 건 숨 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는 엄마로 살아가는 일의 갈등을 얘기했다. 그건 200퍼센트 공감하는 대목이다. 엄마의 자리는 어렵고, 가끔은 두렵다. 그 가운데 내 문제가 함께 한다면 서로 얽혀서 쉽게 엉킨 실타래를 풀기 힘들다.     


난 친구의 얘기를 잘 들어주리라 마음먹고 기차를 탔다. 평소대로라면 말하는 일에 집중할 터지만 오늘은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가끔 1박 2일로 만나서 여행을 했지만, 이번처럼 몇 시간을 위해 달려온 적은 없었다.   

  

그만큼 답답하고 절실한 무엇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서울의 공기가 가슴속 쌓인 것들을 날려 버릴 수도 없다. 그저 가장 솔직하게 내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린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짝을 이뤘다. 내가 일찍 가서 자리를 잡아두면 지각 직전에야 그가 와서 헐레벌떡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함께했고, 시간을 보낸 지가 30년이 다 되어간다. 서로의 20대와 30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잘 안다. 

“너 괜찮아?”

“나 너무 힘들어.”

그 짧은 한 마디의 무게가 상징하는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미뤄 짐작해 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정말 짧았다. 주말 백화점이란 공간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카페에 가니 대기가 상당하다. 얼마간을 헤매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일상들이 오갔다. 지난번에 오가다 멈춰버린 꺼내놓기 힘든 것들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      


난 다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우린 어릴 적 여고생으로 돌아갔다. 지금 주변에 보이는 것들, 사람들의 모습, 패션 매장에서 봤던 옷 이야기부터 작품처럼 다가왔던 유명브랜드 그릇까지 지금 찾아오는 감정과 느낌들을 나눴다.     


4시 반이 지난다. 집으로 가져갈 것으로 스콘 몇 개를 샀다. 사람들의 무리를 헤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개찰구 앞에서 친구와 가벼운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버스정류장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짧은 일정 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마음이 왜 그런지 한번 살펴봐.”

한동안 먹먹함이 나를 휘감았다. 친구와 난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루를 보내기도 쉽지 않음을 절감하는 중이다. 표현해야 안다고, 그래서 말을 하라고 재촉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저 말이 필요 없었다.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새벽을 달려, 새로운 공간 그곳에서 마주한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말을 하면 속이 시원할 수 있지만, 다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마주해야 하는 아픔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넌 나를 봐줄 것 같아서'라는 서로를 향한 진심을 만났다. 하루가 지난 지금 떠올리니 그 순간은 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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