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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03. 2023

내 생활의 기록, 안경

일상에서 나를 만날 때


 

안경을 오랜만에 새로 했다. 언제부턴가 세상을 보는 내 눈앞의 것들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잘 안 보인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어딘지 모르는 불편함이 찾아왔다. 지난가을부터 겨울이 깊어지는 12월까지 컴퓨터 앞에서 씨름했기 때문이라며 애써 나를 안심시켰다.     


한번 찾아온 생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시력검사를 다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시력은 그리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느낌으로는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이런저런 망설임 속에 있다가 단골 안경원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염려했던 것만큼 안 좋아졌다. 노트북 작업을 오래 했고, 요즘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볼 때 종종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나 역시 남들처럼 휴대전화기에 손을 놓지 않을 수도 있음을 경험한 적도 있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확인하는 순간은 마음이 움찔했다. 

“제가 많이 나빠졌나요? 병원에라도 가봐야 할까요?”

“아니에요.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찾아왔어요. 이런 정도는 괜찮아요.”

안경원 주인은 별일 아니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시력 측정을 하는 몇 분이 지나자 널뛰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이미 알고 왔는데 혼자 왜 이리도 유난을 떨까도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우왕좌왕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눈에 다가오는 숫자판을 정확하게 읽어 내려가지 못할 때의 기분은 묘했다. 깜깜한 터널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떠올릴 정도다. 여기에 초조함과 답답함이 더해졌다. 오랜만에 숫자를 향한 내 눈은 초 집중상태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왜 이리 피곤했는지 살펴보니 시력검사가 원인이었다.    

  

안경테를 고를 때는 급속하게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마치 백화점에 오랜만에 쇼핑 나온 사람처럼 들떴다. 어떤 것이 내게 잘 어울릴지 자세히 살폈다. 마치 안경테를 바꾸는 일이 외모의 대전환을 갖고 올 것처럼 잠깐 기대감에 부풀었다. 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사장님이 몇 개를 골라 주었다.   

다섯 개 정도의 테를 살핀 후 검정과 투명이 들어간 뿔테를 골랐다. 빨간색이 들어간 것도 우선순위에 두었지만, 너무 화려해서 매일 하기는 부담이었다. 새로운 안경테를 쓰는 순간 분명 그동안과는 다른 느낌의 내가 있었다. 둥근 검정 테두리는 내 얼굴을 선명한 게 만들었다.     


안경은 렌즈 문제로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안경원에서 직접 작업할 수 없는 것이라 다른 전문업체에 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을 보내며 새로운 안경을 쓴 내가 기다려졌다. 어제와 다르지 않을 테지만 안경이 나를 변화시켜 줄 것이라는 설렘이 일었다.  


안경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썼으니 30년이 지났다.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산 이것이 이날 따라 내 생활의 기록으로 다가왔다. 시력이 별로라니 일상의 여러 습관이 천천히 스며들었나 보다.      


내 주변의 것들이 다시 보일 때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안경에 대해서 이번처럼 특별하게 여겼던 적이 없다. 시력이 나쁘니 쓰는 게 당연하다고만 여겼다. 안경을 끼면 뿌옇던 세상이 뚜렷해진다. 잠자기 전까지, 일어나서 바로 하는 일이 안경을 쓴다. 그동안은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내 눈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도록, 몸과 마음을 편히 두어야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었다.     


시력이 전보다 내려갔다는 게 반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새로운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경은 내가 지나쳐 버린 시간을 들춰내게 하는 고마운 것이었다. 안경을 통해서 바라본 나만의 세상이 모여, 나의 하루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으로 안경은 난시가 심해 대상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일이 힘든 내게 그것이 참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러니 과장을 더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공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 안경이 익숙해질 무렵에도  이런 마음이 이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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