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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9. 2022

샌드위치가 샌드위치를 부른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 그리고 만들기  

서늘한 아침이 좋다. 약간 흐리고 상쾌한 바람이 하루를 연다. 학교와 회사에 가는 일도 없는 휴일이다. 아침을 먹고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집을 나서기로 했다. 목적지는 작은 책방.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으니 간단히 커피 한잔 하기로 했다.     


책방은 10시에 연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여섯 명의 초등생들이 가운데 놓인 탁자에 앉아있다. 책을 펴 놓고 있는 게 아마도 책 읽기 수업인가 보다. 책방 주인은 갑자기 들어서는 우리를 보자 놀라는 눈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책 좀 봐도 될까요?”

너무나 이상한 문답이었다. 책방에 책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질문을 받아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래도 목적지였으니 잠깐만 둘러봤다. 작은 책방이라는 이름처럼 몇 걸음만 걸어도 될 만한 공간이다. 왠지 눈치가 보여 얼른 문을 닫고 나왔다.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아줌마 서넛이 수다 중이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아침을 먹은 막내가 다시 뭔가를 먹고 싶다고 했다. 샌드위치 맛집이라고 남편과 내가 하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비프와 치킨 샌드위치에 초콜릿과 커피 음료를 시켰다. 블로그 리뷰처럼 샌드위치 맛은 훌륭했다.    

일요일 우리 집 샌드위치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평범했지만 신선한 재료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게 괜찮았다. 온 가족이 샌드위치 한 조각씩을 먹고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우리 내일 아침 메뉴는 샌드위치다. 어때, 괜찮지?”

모두가 대환영이다. 카페에서 먹은 그 맛을 따라 하고 싶었다.      


예상에도 없던 충동적인 발언이었다. 몇 시간 후에 후회할 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빵도 집에 없으니 그냥 지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큰아이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낼 샌드위치 빵 있어요? 내가 가서 햄이랑 사 올게요”

늦은 오후에 갑자기 아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었으니 다음에 먹자고 하기도 그랬다. 꼼짝없이 일요일 아침엔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다.      


집에 보니 양상추도 없고 있는 건 달걀과 토마토와 치즈, 사과, 상추가 전부다. 있는 거로만 하기. 다른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순간 숙제 같은 게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걀을 삶았다. 보통은 물이 끓고 나서 9분 정도를 삶는데 카페의 촉촉한 달걀은 8분이 적당할 듯했다. 

  

그다음은 샌드위치 햄을 구웠고 나머지 사과와 토마토를 썰어두었다. 발사믹에 참깨, 마요네즈와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꿀을 더해서 소스까지 만들었다. 식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침은 그렇게 샌드위치로 흘러갔다. 그동안은 가끔 샌드위치를 만들긴 했지만, 이번처럼 제 모양을 갖추는 일은 별로 없었다. 구운 빵에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얹어 먹는 정도였다. 그것이 우리 집 휴일 아침 식사였다. 있는 것을 다 동원해서 샌드위치에 집중했던 건 어제 먹은 샌드위치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만들면 어떨까? 이 정도의 맛을 낼 수 있을까? 호기심과 함께 설레는 마음이 따라온 결과였다. 가끔 밖에서 먹는 음식이 집안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훌륭한 것이었다면 꼭 한번 흉내 내고 싶어 진다.      

맛있게 먹은 카페 샌드위치

요리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사라지기 전, 며칠 이내로 어설프게나마 그 음식에 도전한다.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더 괜찮은 맛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탄생할 때도 있다. 잘 될 때는 혼자만 아는 즐거움이, 그와 반대일 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래도 중요한 건 무엇을 도전했다는 점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음식이 내게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너무나 까다로운 손님이라고 말한다. 음식이 내 앞에 놓이는 순간 ‘이건 나도 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이 드는 건 그리 마음이 가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잘 흉내 내기 어려운 나물무침 한 접시를 받아 들 때 더 기쁘다. 


그동안 샌드위치에 대해 그리 마음을 두지 않았다. 돈을 주고 사 먹는 일은 괜스레 아깝다고 여기며 반기를 들었다. 휴일 카페에서 먹은 샌드위치는 그동안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보통의 것인데도 자꾸 생각나는, 그래서 특별한 샌드위치였다. 한동안은 휴일마다 샌드위치를 만들며 그때 맛의 기억을 따라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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