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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01. 2022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 분석

공원을 돌고 친구와 나누는 커피 이야기


    

운동을 끝내고 나면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침 막내가 학교로 가고 나면 동네 공원을 걷는다. 아이가 매일 같이 학교에 가는 단짝의 엄마 역시 이 시간에 나오기에 함께 하게 되었다. 보통은 약속을 하지만 우리는 그냥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났고 그 시간이 늘어갔다. 서로가 운동 친구라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전날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내가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공원 옆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리게 되었다. 맨 처음 누가 샀는지 모르겠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고는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갔다.      


아파트에 들어서기 전에 마지막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한다.  그 끝에서 항상 인사를 건넨다.

“커피 잘 마실게요. 오늘 잘 보내요.”

커피를 산 이에게 얼마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헤어진다. 습관처럼 굳어졌다. 늦은 봄부터 찬 바람이 불기까지는 차가운 것을 그다음부터는 따듯한 커피가 주를 이룬다.    

누가 먼저 사야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그날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산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주고받는 형태로 변했다. 커피값이 그리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어서 서로가 기꺼이 고마움을 전한다. 

    

이렇게 커피를 서로가 사고 마시고 한지는 2년 정도가 흘렀다. 코로나로 모두가 조심할 땐 역시 바깥에 나오는 것도 꺼려질 만큼이었기에 그때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이젠 마스크를 낀 채 아침이면 만난다.     

 

어젠 내가 커피를 샀다. 후텁지근한 날씨가 너무 힘들었다. 당장에라도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같이 하는 친구가 있어 조금 참고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집에 가기 전에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셔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커피 사 갖고 가요. ”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서 있는 자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살짝 마셨다. 그제야 몸이 살아난다.  


우리 손에는 커피 한 잔이 들렸다. 아침보다 몸은 가벼워졌다. 추석이 돌아오니 복잡해진 마음을 털어놓았다. 해담이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된다. 주말을 빼고는 매일 만나기에 자연스럽게 일상이 오간다. 그러다 보면 절로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는 잘 들어주는 친구다. 듣고 나서는 “그래요”라는 공감과 때로는 “그럼 하지 말아요”라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건넨다. 내가 당연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렇게 매일 아침 나눠 마시는 커피는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공짜는 없어. 그게 무엇이든 말이야.” 어떤 말을 하다 보면 결론에 가서는 이 것이 따라붙는다. 꼭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정신적인 나눔이나 모든 일이 상호작용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서로가 통하는 관계를 맺기까지는 마음을 써야 가능하다. 절로 이루어지는 건 없었다.    


그런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지지받거나 보답받고 싶은 바람 같은 것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난 마음을 나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 게 없으면 빈 깡통처럼 느껴진다. 겉에서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관계가 오래가기 힘들다. 

이런 감정 역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또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난 무얼 했다고 하는데 다른 이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상대방에게 잘해 주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해 버린다면 타인에게 내어줄 가슴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고받는 동네 친구 같은 사이를 바란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고 배려할 줄 아는 것. 오롯이 사실을 바라보고, 평가보다는 그저 그것을 들어주는 일에만 골몰하는 그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      


우리가 서로 커피를 나누는 사이게 된 것은 스스로 마시고 싶은 욕구 이전에 어제 샀으니 오늘은 내가 사야지 하는 관심과 정성이 담겼다. 모든 관계에서 일방적인 것은 오래가기 힘들다. 물론 정말 넓은 품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감싸주고 기다려 줄 수도 있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 것 같다. 단지 그 정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함께했고, 서로 맞춰가는 동안 자연스러움이 조금씩 싹을 틔웠기에 가능했다. 동네 친구와도 예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졌다. 무엇을 얘기해도 기꺼이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에게 아침 커피 한 잔은 그것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커피는 좀 힘들어 보일 때 힘내라는 응원이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주부의 일상에서 집으로 돌아간 얼마 동안 커피에 기대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서로가 커피를 찾지 않았다. 난 요즘 속이 안 좋아서 커피를 조금 멀리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친구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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