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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02. 2022

빵 말고 고구마 떡 강정

일상 속에서 나를 만나던 날


뜻하지 않은 일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내 행동을 살펴보고 내가 나아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 문득문득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에 잠긴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런 점에서 지루한 게 아니라 특별하다. 오랫동안 이어오다 보면 당연하다 여겨진다. 그러다 문득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볼까 하는 망설임 후에 내린 결정 앞에서 나를 만났다.      


막내가 하루 걸러 친구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면 한 시간 정도 논다.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엄마끼리 아는 사이여서 가능했고, 서로를 배려하는 일이었다. 서로 족히 10년은 알고 지냈다.    

 

그럼에도 집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은 신경이 쓰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둔다. 정리의 기술은 늘지 않지만, 이때 만은 조금이라도 집을 치운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바닥을 닦고 소파 위에 놓인 물건도 어디로 다시 가져다 놓는다.      

고구마 떡 강정 

그런 다음 과제는 간식이다. 집에 있는 과일이나 과자를 내놓거나 손수 만들어서 준다. 아이는 어제 친구 집에서 빵을 먹었다고 했다. 점심 무렵에 시장을 보러 가는 길에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빵을 몇 개 사서 줄까 망설이다 이내 단념했다. 어제와 똑같은 걸 내놓기가 불편했다.     


고민하다 아이가 올 즈음에 고구마 떡 강정을 만들었다. 햇고구마를 잘 씻고 흙이 묻은 부분만 껍질을 벗겨낸 다음 울퉁불퉁하게 썰었다. 기름에 고구마가 익을 정도로 튀겨낸 다음 물과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해서 만든 시럽에 섞었다. 마침 주말에 떡볶이를 만들다 남은 떡이 있어서 조금 말랑해질 정도까지 튀기고 함께 넣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준 깨를 적당히 뿌려주었다.  시럽을 머금은 떡과 고구마는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자연의 색이었다. 부드러운 고구마의 노랑과 떡의 하양의 어울림이 괜찮았다. 


평소에는 번호키를 누르고 오는 아이가 친구와 올 때는 항상 벨을 누른다. 4시 무렵에 피아노를 끝내고 친구와 집으로 왔다. 몇 분 전에 만들어 놓은 간식을 하얀 볼에 담고는 포크와 함께 상에 올렸다.     

“엄마, 이게 뭐야?”

“아~ 고구마 떡 강정. 고구마 맛탕 하고 비슷해.”

“완전히 달콤하다. 떡이 맛있네.”

아이는 메뉴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고는 친구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음식을 만들다 보면 준비하고 정성을 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은 소박할 때가 많다. 싱크대에 야채를 다듬고 남은 것들과 여러 가지 재료를 손질한 것들이 쌓인다.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에 비해 한 그릇에 담긴 그것은 정말 작다. 그럼에도 내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밀 키트로 간단히 조리하고나 주문해서 먹어도 될 것을 이리도 부산을 떨며 고생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다.      


아이에게 만들어 준 간식 역시 간단하지만 몇 번의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 시럽을 따로 만들고 고구마와 떡을 따로 튀겨내고 기름을 뺀 다음 적절한 온도에서 조려야 했다. 아이에게 몸에 좋은 음식을 주려는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물론 이런 점도 없지 않겠지만 더 솔직한 마음은 내 일을 찾아서 했다는 것이었다.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항상 내 일에 대한 갈등을 마주한다. 주위에 알고 지내는 워킹맘의 일상을 통해서 자극을 받는 것도 아니다. 혼자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회사와 집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것에 구분 지어 놓고 고민했다.    

 

그동안의 연장 선상이었을까? 집에서 여유가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작용하는 듯했다. 얼마를 주고 빵을 사 오는 일이 어찌 보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몸을 움직여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을 내 앞에 놓여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평가했다.      


조용히 있는 나를 가만두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이끄는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다시 활기를 찾는 동력이 될 때도 많다. 이 지점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오전까지는 멍해 있었는데 간식을 만들면서 움직였더니 정신이 맑아졌다.     

 

다시 하루를 보내고 글을 쓰면서 돌아보았다. 아침부터 떠오른 생각은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를 한 걸음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내 하루를 만드는 일들은 대부분 반복적이고 습관적이다. 몇 년 혹은 그동안 삶의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 속에는 내가 바라는 여러 가지 풍경들이 담겼다. 좀 전에 회색으로 변해가는 로즈메리 잎을 가위로 잘라내었다. 잎이 갈색으로 변한 스타피필름도 정리했다. 집안을 오가다 주기적으로 하는 식물 돌보기도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내 바람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였을 때만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건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억지스러움이 아닌 원하는 일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는 일은 그래서 기쁨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여유로움으로 나를 마주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당당한 시간이 내게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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