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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5. 2022

늙은 호박 튀김

 아름다운 시절을 그려보다


   

늙은 호박이 하나 생겼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윗집 언니가 일주일 전에 갖다 주었다. 이제야 가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호박은 그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까?    

 

아침에 이 호박을 갖고 어릴 적 먹던 반찬을 만들었다. 호박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낸 다음 적당히 썰어 물을 조금 넣고 끓이다 호박이 익으며 집간장과 참기름, 깨를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호박 나물이었다. 아침을 먹는 내내 호박의 투명한 부드러운 속살과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아주 오래전 추억에 머물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부엌에서 늦은 오후에 한참이나 튀김을 만들던 모습이었다. 집에서 외갓집까지는 아이 걸음으로 한 40분은 걸렸다.  80년대 시골길은 비포장이었다. 곳곳마다 움푹 팼고 도랑엔 물이 가득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아무리 빨리 움직였다 해도 도로 사정이 이러하니 꽤 시간이 걸렸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며 내달렸다.   

우리 집 늙은 호박

그런데도 종종 외가에 갔다. 엄격했던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으셨고 할머니는 언제나 넉넉한 품을 내어 주셨다. 겨울방학이었다. 전날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점심을 먹고는 집 곳곳을 오가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조곤조곤 나누는 말소리와 함께 불 피우는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부엌은 까만 가마솥이 두 개 정도 걸렸고 그 옆으로 아직은 은빛을 내는 작은 솥 하나 해서 솥 세 개가 집안의 대소사와 식구들의 밥을 책임지고 있었다. 부엌은 오랜 세월이 입혀진 탓에 그을음이 진했다. 어떤 물감으로도 흉내 내기 힘든 깜장이었지만 정겨웠다. 그곳에서 두 분이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늙은 호박이었다. 할아버지가 숟가락으로 속에 있는 것을 박박 긁어내더니 껍질을 벗겼다. 세로 모양으로 대충 썰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겉면이 검게 변해버린 냄비를 들고 와서는 하얗게 큰 덩어리 하나를 담았다. 삼발에 냄비를 올리고는 아래로 작은 나뭇가지를 놓고 불을 피웠다. 지금으로 치면 미니 가스레인지라고 해야 할까?     


금방 불이 붙었고 하얗던 그것은 투명한 기름으로 변했다. 그 옛날 겨울이면 시골에선 몸보신을 위해 쇠 추렴을 했다. 나이 많고 그리 값이 나가지 않는 소를 몇 사람이 사서 고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아마 할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얻은 쇠기름을 한 곳에 모아두었던 모양이었다. 고기가 귀했기에 무엇 하나라도 소중히 다루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밀가루 반죽에 썰어놓은 호박을 넣었다. 그런 다음 다시 팔팔 끓는 냄비에 넣어 튀김을 만들었다. 

“하나 먹어봐라. 이거 식으면 맛없고 지금이 제일 맛이 좋을 때다.”

할머니가 접시에 가득 담아서 주신다. 식용유로 만든 튀김과는 전혀 다른 조금 묵직한 늙은 호박 튀김이었다. 추운 날이었기에 입에 넣으려는 순간 튀김은 식어가면서 쇠기름 특유의 향이 오래 머물렀다. 호박 튀김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은 외손녀를 향한 마음이었다.     


부엌은 불 때는 연기와 동시에 튀김의 열기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난리였다. 그 속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쉼 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듣다가 추임새를 넣듯 반응했다. 집 뒤편 숲의 산새 소리와 대나무밭에서 바람이 스쳐가는 동안 들리는 바스락 거림은 두 분의 대화와 어울려 잔잔한 음악처럼 들렸다.     


지금은 희미해진 듯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등도 굽었다. 눈도 어두워진다며 돋보기를 껴야 시원하다는  노부부가 부엌에서 함께 삶을 나누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두 분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서로에게 기대고 살아온 시간이 더해져 가능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부엌은 부인의 몫이라고 여겼을 만한 시절에 태어난 할아버지였지만 자연스럽게 부엌에 드나들었다. 할머니가 허리가 아플 땐 손수 솥에 물을 끓였고, 방을 따뜻하게 했다. 내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 대한 가장 각인된 추억의 한편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노부부의 일상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어머니를 남겨두고 홀연히 하늘로 떠났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여준  눈부신 그날을 부모님에게서도 느끼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늙은 호박이 나오는 가을이면 그때가 종종 떠오른다. 기꺼이 튀김이 되어주었던 내 얼굴보다도 더 컸던 큼지막한 호박은 두 분이 살아낸 세월과 닮았다. 그것을 함께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며 나누었던 두 분의 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요즘처럼 직접화법으로 사랑을 외치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그저 알았을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삶을 지탱해 온 두 기둥으로 말이다.     


호박 나물은 내게만 인기다. 다른 이들은 관심이 없다. 내 가슴속에 머물러 있는 호박 튀김의 정서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가진 힘,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과 주변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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