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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23. 2022

동그랑땡처럼

보장된 결말과 그렇지 않은 일상의 줄다리기



마트에서 장을 보다 냉동고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여러 브랜드의 동그랑땡이 들어온다. 어느 것을 살까 몇 분 고민하다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동안의 경험상 아이들은 냉동식품을 반기지 않는다. 접시에 대여섯 개가 있다면 한두 개 먹는 정도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내 편리함만을 내세우기는 힘들다.  보통을 유지하는 맛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힘든 것. 공장을 거쳐서 나오는 식품들의 한계다. 물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주는 강점이 있기에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환영할 만하다.      


돼지고기 간 것을 한 팩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결과가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설렘이나 긴장보다는 편안함을 전한다. 일에서도 그러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 역시 그랬다. 아이들은 동그랑땡을 좋아한다. “고기는 진리다”라는 어느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은 대부분 환영받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도 외면받았던 적은 과장을 조금 더 해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의 일로 치면 뻔히 보이는 성공의 길이라고 하면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식탁에서만큼은 언제나 박수받기에 바쁘다.     

 

종종 동그랑땡을 만들어 먹는다.  채소를 골고루 먹게 하려는 마음과 아이들이 선호하는 것 사이에 절충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가지와 풋고추 대파, 마늘까지 넣고는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역시나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팬에서 익어가는 동그랑땡을 보며 서너 번 이상 들뜬 마음을 전했다. 밥그릇에 밥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이날 저녁은 동그랑땡이  식탁을 정복한 셈이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어제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그리된다면 일상에서 그리 피곤하거나 고민할 일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면 삶을 가볍게 살 수 있을까? 현실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삶이 생각대로 될 일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면 산다는 일이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다. 동그랑땡으로 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가장 아이들에게 사랑받지 않을까 싶다. 어제도 오늘도 다음 주도 머릿속에서 잊힐 시간 없이 들이댄다면 맛있는 음식은 그저 그런 것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가끔 사이사이에 안정된 것을 끼워 넣는 일상. 이건 아마 유연함이고 잘 사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뻔히 아는 것들 사이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시작할 힘을 모아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순간이 이때다.


동그랑땡을 만드는 일이 실패 확률 제로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으로 치면 많은 경험이 따랐다. 중학교 2학년 때다. 부모님이 서귀포에 모임이 있어 떠나고 없는 저녁이었다. 갑자기 동그랑땡이 생각났다. 시골이었지만 그때 마침 돼지고기가 있었다. 덩어리 상태였고 어설프게 그것을 잘게 다진 다음 집에 있는 채소를 모아 반죽을 만들고 동그랑땡을 부쳐내었다.    

  

그런데 불과 기름을 쓰는 법을 몰랐기에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익기 전에 주걱을 집어 들어 뒤집으려 했고 그런대로 둥그런 모양을 갖췄던 동그랑땡은 그냥 모래성이 가라앉는 듯한 모습으로 엉망이 되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랬다.     


그렇지만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망가진 채로 그것을 익혔지만 먹을 수 없었다.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너무 간을 세게 한 탓에 짠맛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도 정말 기분이 별로였고 실망이 컸다. 그날 그 요리는 더 생각할 나위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 후 자취 생활하는 동안에도 동그랑땡을 종종 시도했다. 그때는 감자와 당근 양파가 주를 이뤘다. 별 도구가 없던 탓에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서 채소를 같이 넣고 갈아달라고 했다. 대학생이었음에도 역시 동그랑땡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불과 팬에 넣을 기름양을 조절하지 못해 제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엄밀히 말하면 고기 채소튀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시각적으로  점수를 주기 어려운 요리였다. 그렇게 동그랑땡은 십 대와 이십 대까지를 거치면서 이제는 나만의 스타일이 탄생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거저 되는 건 없다.     


하루를 살아가는 일도 동그랑땡처럼 결과가 보장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적절히 조화되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시간이 걸려야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들을 한순간에 해결하려 할 때가 많다. 나와 친한 음식들을 통해서 가끔 들여다보게 되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도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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