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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04. 2022

버섯덮밥과  타인의 취향

남편이 먹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반찬이 별로 없다. 김치뿐이다.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탓에 나와 큰아이는 별생각이 없다. 그래도 늘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남편과 막내의 사정은 달랐다.

“저녁 먹을 거지? 언제쯤? 6시 반?”

“응, 그때 먹을까?”

뻔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던진 물음은 정해진 답으로 돌아왔다. 


냉장고 문을 여닫았다. 우리 집 식량 창고인 그 속에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별다른 재료가 없다. 계란은 서너 개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 떠오른 건 덮밥이었다. 동네 친구는 반찬이 없을 땐 있는 야채들을 모두 썰어놓고 볶은 다음, 밥 위에 올려 먹는 덮밥을 종종 준비한다고 했다. 나도 이날 저녁에 가장 어울린다고 여기며 지나는 소리로 물었다.

“여보, 버섯덮밥 어때?”

“어? 버섯? 좀 그만 먹고 싶은데.”

순간 깜짝놀랐다. 

   

이것만큼 부지런히 챙기는 게 있을까 할 정도로 새송이와 표고버섯을 자주 식탁에 올렸다. 처음 시작은 건강에 좋고 가격 또한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 더불어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남편의 반응 역시 식탁에 오를 때마다 아이들에 비해 잘 먹었다. 난 그가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동안의 확고했던 내 믿음이 사실과 다름이 드러났다.     

“아니, 당신 버섯 좋아하잖아?”

“좋아한다기보다는 식탁에 오르니까 먹은 거지. 난 원래 반찬을 가리는 편이 아니잖아. 그래서 먹었는데 요즘은 너무 자주 먹다 보니 질리더라고.”

 ‘질린다’는 말이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분명한 표현이었다.  


혼자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줄 몰랐다. 

“엄마, 뭘 그렇게 놀라. 엄마가 사실 버섯을 자주 올렸잖아. 아빠 반응은 당연한 것 같은데.”

큰아이는 내 표정이 이상한지 말을 건넸지만 몇 분 동안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행동이 좀 못마땅했다. ‘미리 너무 자주 먹는다고 말했으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다시 돌아오는 생각은 내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만 향하고 행동했던 나였다. 어찌 보면 남편과 난 타인이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라는 관계를 통해 여러 가지를 공유하고 살아가지만 정말 다른 점이 더 많다. 십여 년을 살면서 그것을 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함께 해야 한다거나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또 다른 줄기는 내 취향을 강요한 것 아닌가 하는 물음이었다. 그러면서 왜 난 그토록 버섯에 집착했을까도 싶다. 먹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대체해 줄 수는 없는데 말이다. 건강을 향한 진심이 균형을 잃었던 게 아닐까? 그날 저녁은 묵은지에 통조림 참치를 넣고 볶은 것으로 대신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깜박하게 되는 일이 잦다. 그저 알고 있다고 단정 지으면서 생기는 오해가 일상의 무게로 다가올 때도 종종 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버섯 사건으로 부르고 싶은 토요일의 일이었다.      


밥을 준비하면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럴 것이라고 결론지어놓고 음식을 만들던 일. 매일 그러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일에 부지런해야겠다. 

“뭐 먹고 싶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타인의 목소리로 나온, 그들의 언어가 타인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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