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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03. 2022


사과 케이크

사과 편


오랜만에 빵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사과가 주인공인 사과 파운드케이크. 어제부터 빵을 만들고 싶었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사과를 이용해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드는 영상을 살짝살짝 보았는데 그 기억이 아침까지도 나를 자극했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빵틀을 꺼냈다. 십여 년 전 한참 빵 만드는 일에 정신이 팔렸을 때 흔적들이 곳곳에 남았다. 말끔하지 않아서 더 정이 갔다. 사과 두 개의 껍질을 벗기고 나박 썰기한 다음 버터와 설탕을 넣고 조렸다. 어느 블로거의 레시피를 참고해서 밀가루와 버터, 달걀을 100그램씩 계량해서 섞었다. 설탕은 건강을 위해 조금만 넣었다. 사과가 버터와 설탕에 조려지는 동안 고소하면서도 따뜻한 향이 피어오른다. 좀 더 깊은 맛을 위해 시나몬 가루도 뿌렸다.      


반죽이 잘 어울리도록 섞은 다음 사과를 더했다. 틀에 식용유를 살짝 바른 다음 반죽을 차분히 담았다. 에어프라이어에서 170도 35분을 구웠다. 예상보다 괜찮은 빵이 나왔다. 빵 만들기가 끝나면 반죽 그릇과 버터의 끈적함이 남아있는 주걱, 스테인리스 볼을 설거지하는 일까지 여러 가지 일이 나를 기다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다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나서게 된 건 조금 복잡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던 사과 파운드케이크

아이가 어릴 때는 일하느라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여유가 없었다. 집에 오면 아이가 일찍 잠들기를 바라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다.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다가도 시험 결과에는 절로 예민해진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내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굳어있다. 

“엄마, 얼굴은 안 괜찮은데. 엄마 화난 거 아냐?”

아이에게 속마음을 들켰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속상하고 불편했다.     


어제도 그랬다. 아이 역시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엄마는 어떤 마음인지 분명히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때마다 난처하다. 잠깐 망설이다 솔직히 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지금의 상황에서는 걱정된다고. 아이는 다시 자신은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항변한다. 얼마간 서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는 원하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전에 학원시간에 되어 집을 나섰다. 


아이가 학원에서 집에 늦게 오는 날이면 데리러 간다. 바로 집 옆이라 몇 분 걸리지 않지만 그날따라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어색함이 그려지면서 발걸음이 무겁다. 학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온다.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시켜서 얘기를 이어갔다. 우선 아이에게 사과를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고 하면서는 어찌 보면 내 욕심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었다. 아이에게 어떤 심정으로 내 얘기가 다가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그저 내 맘 편해지자고 했던 억지스러운 시간이었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외면하고 싶은 나를 종종 만난다. 그날이 그날인 일상보다는 무언가에 안정이라는 요소가 깨지는 날이 그랬다. 사과 파운드케이크는 그날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엄마의 정성으로 아이의 마음을 풀어준다는 의미였을까? 그런 것 같진 않다. 단지 내가 아이에게 엄마로서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떠오르는 건 맛난 걸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따라가 보니 빵이 떠올랐다.

 

“엄마, 우리 빵 만들어 먹자.”

아이가 가끔 엄마 빵이 담백하고 맛있다며 전에 먹던 맛을 그리워했다. 그때마다 “알았어. 언제 만들자.”라고 대충 답하고 흘려보냈다. 그런데 다른 이가 빵을 만드는 모습은 잠들어 있던 빵 만드는 시간을 살려내었다. 그 중심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 건 내가 엄마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바깥에서 상처 입고 힘든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오면  포근히 안아주는 넓은 품을 가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 편히 숨을 내쉬며 내일을 살아갈 작은 힘이 싹튼다고 믿었다. 이런 평소의 생각은 현실에서 망각되고 철저히 외면해 버릴 때가 많다.  


빵은 생각보다 괜찮은 맛으로 성공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만든 파운드케이크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만했다. 별로였던 수많은 것 중에서 이제야 어떻게 하면 그런대로 제맛을 내는 케이크가 완성되는지 감을 잠은 듯했다. 아이와의 관계도 이럴까? 실수를 거듭하고 나를 다시 돌아보다 보면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잘 될 거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울 듯하다. 난 아이와 적당히 달고 촉촉한 사과를 느낄 수 있는 케이크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이상하지 않은 정도를 바란다. 사과를 넣은 건 우연일지 모르지만 지금 보니 다시 아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지난다. 이런 상태가 내 안에 오래 머물다 가고, 다시 나를 제대로 돌아봐야 할 터인데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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