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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04. 2022

우울을 밀어낸 설렘-모닝빵

몸을 움직여 마음 달래기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을 뒤로하고 마음을 따라갔다. 당연히 집을 나서 매일 하는 동네 공원 걷기를 쉬기로 했다. 혼자 남은 조용한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다 침대에 잠깐 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마음을 위한 행동이다. 그렇게 몇 분을 보내고 나서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십여 년 전 한 번 만들었던 모닝빵 만들기에 나섰다. 간단하게 설명된 어느 유튜버의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집 밖에 정말 나가기 싫은 날이었지만 빵에 관한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빵에는 꼭 인스턴트 이스트와 우유가 필요했다.      


어제저녁부터 찬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내려갔다. 아침 날씨는 어제와는 사뭇 다른 초겨울날이다. 아파트 주변에 쌓인 낙엽이 바람에 흩날린다. 얼마나 가벼운지 경비원 아저씨가 좀 전에 쓸어다 모아둔 낙엽 작은 덤불은 옆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찬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살아난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일수록 안에 머물기보다 밖으로 나가는 걸 권하나 보다. 여름에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는 아주 우울한 이에게 산책이나 운동같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움직이는 걸 권하는 것은 테러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한 모닝빵 

     

그때 친구는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나 보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는데 자신의 상태와 동일시되어서 그렇게 강하게 말했던 것 같다. 난 그 친구에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냐며 말을 이어갔다. 때로는 나도 정말 꼼짝하기 싫은 날이 있다. 아침이 그랬는데 모닝빵이 뭐라고 집을 나섰다. 대부분 이런 날은 수다가 그리웠지만, 오늘은 예외다. 익숙지 않은 것을 시도해 보는 설렘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밀가루와 우유, 설탕, 소금, 기름, 달걀이 들어가는 빵은 발효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20분 그다음에는 1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제법 동글동글 귀여운 모양이 나온다. 중간에 모양을 잡는 과정에서 반죽이 내 손에 닿을 때 다가오는 부드러운 감촉이 참 좋다. 100일이 안 된 갓난아기의 피부 같다. 말랑말랑함이 밀려오고 난 뒤에는 부드러운 편안함이 찾아온다. 

  

20분 정도를 구우니 노릇노릇한 빵이 완성되었다. 점심 무렵부터 시작해 3시를 조금 넘겨서야 모닝빵이 탄생했다.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극한의 부드러움을 자랑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시피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보다 반죽이 너무 질어서 중간에 밀가루를 더 첨가하면서 문제가 생긴 듯했다.    

 

그래도 괜찮다. 빵집에서 만나는 말끔한 모닝빵 대신에 어딘가 어설퍼 보이지만 잼이나 여러 가지에 곁들이기에는 충분했다. 언젠가 만들어둔 보니밤조림 한 알을 꺼내어 함께 먹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밤과 담백한 빵이 잘 어울리는 친구 같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모닝빵을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산란했던 마음이 정리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끌림이 다른 여러 가지를 잊게 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날의 불편한 마음을 잡아주는 큰 행운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아주 오래전 첫 빵을 만들던 때도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빵을 먹고 싶은 생각보다는 내 마음대로 손을 움직여 가루였던 것이 모양을 갖추고 여러 맛을 내는 과정이 신기했다. 종일 회사에서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주는 압박감에서 해방되는 시간이었다. 워킹맘으로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시절, 무슨 빵을 만들지 고민하고 레시피를 찾아보는 잠깐잠깐은 나만의 행복이었다.      


모닝빵을 구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내 앞에 놓인 일에서 더 멀리 가버리고 싶은 회피의 심리도 작용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빵을 하나 들었다. 계절을 알아차리고 벌써 차가워진 손과 발에 온기가 돌았다. 그것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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