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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0. 2022

빵과 나

빵을 향한 복잡한 속내 


   

요즘 빵에 관한 생각이 강렬해졌다. 먹는 빵에서 내가 만드는 빵으로 이동했다. 시간만 나면 여러 사람의 레시피나 유튜브를 통해서 가장 쉽게 만드는 법을 살핀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등 꼼꼼히 들여다본다. 대부분은 내가 만들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좋다. 다른 이의 손을 통해서 빵이 완성되는 모습은 작은 즐거움이다.      


난 언제부터 빵을 좋아했을까? 나와 빵의 인연을 생각해 봐야겠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빵은 좀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먹고 싶어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빵집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빵들은 화려했지만 바로 사서 먹기는 어려웠다.  경제생활을 하며 내가 번 돈으로 빵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는 그랬다.      


그럼에도 빵을 바라보는 일에는 늘 열심이었다.  길거리를 지날 때도 그랬고, 잡지에서 사진으로 만나는 빵들의 이야기는 가보지 못한 세계를 동경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빵을 설명하는 몇 개의 단어 안에서 의미를 떠올리고는 맛을 느낌으로 그려보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대로 먹고 싶은 빵을 진심으로 대했다. 대학생 시절 친구와 종종 가던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선 커피를 주문하면 항상 갓 구운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갓 구운 식빵에 버터와 딸기잼이 작은 플라스틱 사각 상자에 담겨 나왔다. 때로는 커피보다 그 빵 때문에 그곳을 찾았을 정도였다. 배고픈 날에는 든든한 한 끼의 식사가 되었고, 때로는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었다.      


행복감을 주는 빵이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그것은 절제를 잊게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빵을 좋아하지만, 빵집에 가면 망설인다. 내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서성이다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빵을 먹고 싶은데 건강을 생각한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탄수화물 양을 줄일 것을 권했다. 그때 예로 든 것이 떡과 빵이었다. 빵이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콕 지적당하고 나서부터는 신경이 쓰인다. 보면 먹고 싶지만 결정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은 절충하거나 ‘내일부터 먹지 말자’는 말도 안 되는 대안을 제시한다. 일관성은 어느 별로 떠나 버렸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빵집에서의 내 모습이었다. 

    

최근에는 빵을 고를 때마다 내가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는다. 쟁반 위에 놓여 계산을 기다리는 빵들은 아이들의 오후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일 뿐이라며 거리를 둔다. 이런 결심은 불과 몇 시간 후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흔들린다.


“엄마도 한 번 먹어봐요.”

아이들의 건네는 한 마디에 주저하다 손이 빵을 향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주 조금만 먹을게.”

아이들에게 미리 내가 먹을 양을 정해서 알린다. 그래야 나도 어쩌지 못하는 빵을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있기에 안전장치를 미리 마련해 놓는다. 


이런 내게 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각 빵틀도 마련해 두었다. 아이에게 큰 카스텔라를 구워주기 위한 준비였다. 전에 없던 제빵 재료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니 이상하다. 그저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한 빵으로 머무르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금은 내게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빵을 만든다고 그걸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일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빵에 불안한 마음을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험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는데 친구와 커피 한잔을 두고 수다 시간을 늘려가는 마음 같다. 


한편으론 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베이킹파우더를 넣거나 발효시키면 얼마 안 되던 밀가루 반죽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며 빵으로 다시 태어난다. 적당히 갈색으로 구워지고 따뜻한 온기에서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찰나에 편안함을 전한다.  아침 빵집에서 나오는 빵 굽는 냄새는 포근한 엄마품 같다. 아침에 우연히 빵집을 지날 때면 별 일이 없는데 기분이 좋다.     

누구를 만날 때면 항상 디저트로 다양한 빵들과 함께한다. 먹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그래야 왠지 안정감 있는 자리로 만들어지는 기분 때문이다. 오랫동안 만난 친구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케이크나 크루아상, 스콘 등 디저트를 권한다. 커피와 달달한 것들과 함께면 더 필요한 게 없다. 빵의 매력은 거기에 있는 듯하다.     


빵에 대한 내 마음을 정리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당장 빵을 굽고 싶지만 조금 멀리 두어야겠다. 가슴속에서 외치는 이야기보다 해야 할 것에 시선을 돌려야지. 가장 가까운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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