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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6. 2022

나를 깨우는 완벽한 방법
고구마전

일상의 균형을 전하는 요리 

  

입동이 지났으니 이젠 가을보다는 겨울에 가깝다. 그래도 내 곁엔 가을이 남아있다. 동네 산책길에는 메타세쿼이아가 갈색으로 물들었다. 떨어진 잎은 도로에 차곡차곡 쌓여 부드러운 스펀지 역할을 해준다. 사람이 그리 오가지 않은 길은 이국의 어느 산책길을 연상시킨다. 이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고 행복이다. 이젠 제법 앙상해진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이대로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얼마 없으면 사라질 풍경이다.  산란한 마음 때문에 문득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이 큰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어느 해보다도 비가 적었던 탓인지 나무의 단풍은 진하고 깊다.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다가도 걱정이 커지면 일상이 살짝 멈추어 버린다. 걱정이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종종 그것과 가까워질 때가 있다. 지인은 문제가 생기면 두려움과 맞닥뜨리기보다는 해법을 찾는데 골몰한다고 했다. 난 그와는 정반대일 때가 많다. 자꾸 불안한 것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멈추지 못한다.      


아침에도 깨기 싫은 마음을 붙들고 일어났다. 갈치를 굽고 아침을 준비하다 무언가 생각났다. 고구마다. 꼭 필요한 반찬은 아니었지만 상자 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큰 것 하나를 가져왔다. 여기저기 벌레 먹은 자국이 가득한 녀석이다. 감자 껍질을 깎는 칼을 들어 그것을 깨끗하게 벗겨내었다. 채를 썰고 계란 두 개와 밀가루 조금 넣고 쓱쓱 버무린 다음 부침개 두장을 붙여내었다.     

아침 고구마 전 

어느새 살며시 즐거움이 고개를 든다. 내가 아침 준비를 하는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다른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저 부침개를 접시에 담고 다른 음식들을 식탁에 올린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그런 행동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식사 전이지만 살짝 가장자리 것을 잘라내어 맛을 보았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우리 엄마의 고구마 맛이다. 살짝 기름이 더해져 고소하고 부드럽다. 내가 요리를 하는 건 아마 이런 근본적인 기쁨을 주기 때문인 듯하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야채를 다듬고 한 그릇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순간은 오롯이 나로 있다. 나를 둘러싼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내어놓는 내게 감사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 몸이 움직여 이것을 만들어 내는 내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아침이었다. 나를 칭찬하고 싶었다. 심리 전문가인 한 교수님은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라 했다. 다른 무엇이 끼어들지 않고 지금 해야 하는 것들을 하는 것. 어떤 것이 나를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둑어둑한 그때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언제나 가족을 향한다. 가끔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삼시 세 끼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식탁을 차리는 일에 바쁘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밥을 하고 국을 끓이는 과정 하나하나가 나를 잠시 건강하게 머물러 있게 하는 일이었다. 별 고민 없이 손을 쓱쓱 움직여 만들어 내는 지극히 소박한 밥상의 시작은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내 앞에 김 나는 따뜻한 음식을 먹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 또한 지극히 감사한 일임을 살며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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