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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8. 2022

열정을 살리고픈 날- 소고기뭇국

나를 위함이 타인을 향한 배려

     

나뭇잎이 물들고 스웨터를 꺼내 입기 시작할 즈음이면 제맛이 드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여겨지는 건 무. 이맘때쯤 무는 무엇으로 흉내 낼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부드러운 단맛은 훌륭하다. 국물이 끌리는 날이면 소고기 뭇국으로 메뉴를 정한다.

  

사람들이 소고기 뭇국이 좋다고 얘기할 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전업주부가 되면서부터 뭇국의 신비한 맛을 알기 시작했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국물은 어느 한쪽으로 쏠림 없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무난하다. 강하지 않아서 특별하다. 얼마나 더 강한 매운맛을 내는지 그 정도를 상중하로 나뉠정도로 맛의 자극에 매달리는 음식들과는 구별된다.

 

매번 무를 썰 때면 맑은 흰 속살에 궁금증이 생기면서 감탄한다. 흙이 묻은 무  껍질을 벗겨내고 사각 썰기 하는 동안 소리마저도 경쾌하다. 무를 좋게 보이기 시작하니 무엇하나 버릴 게 없다. 초록의 무청은 데쳐두었다가 우거지 된장국을 끓이면 맛있게 추운 날 한 그릇으로 손색이 없다. 할 일이 태산 갔다고 투덜대면서도 그것을 씻고 끓는 물에  삶아 두었다.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 소고기 뭇국


무 한 다발에 6~7개가 들었는데 무생채며 섞박지에 무나물까지 무 관련 음식을 매일 내놓다 보니 절반 이상을 먹었다. 딱 일주일 만에 그렇게 많은 무를 먹은 것을 보니 뭔가에 끌리는 일은 예상외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마음이 간다는 건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무 요리 중에서 소고기 뭇국을 사랑한다.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연이어 두 번이나 끓였다. 식구들에게 이 맛을 강요하듯 세상에 없는 자연의 맛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집 무 홍보대사로 변했다. 투명한 무 빛깔과 부드러운 맛, 무엇에도 튀지 않고 잘 스며드는 특징을 이야기하는 나는 조금 흥분 상태다.    

 

여유가 없는 어제저녁에도 뭇국을 한 냄비 끓였다. 지난번보다 더 많이 무를 넣기로 마음먹고 크지 않은 무 하나를 전부 썰어 넣었다. 소고기는 목살 냉동된 것을 적당히 잘라서 썼다. 엄마표 집 간장에 고기를 볶다 붉은빛이 사라지면 무를 넣고 조금 있다 참기름을 더해 볶는다. 무의 날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질 즈음에는 물을 부어 끓이면 된다. 마지막에는 천일염을 조금 넣고 간을 맞추면 끝이다. 맑은 맛을 위해 매운 풋고추 세 개를 적당히 썰어 넣었다.     


오전에는 어느 출판사 편집자의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손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왔다. 무거운 가방을 들은 적도 없는데 아마 최근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그곳으로 몰린 게 아닌가 싶다. 이성으로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라면서도 몸은 자꾸 눕고 싶어 진다. 거실 카펫 위에 쿠션을 뒤로하고 웅크린 채로 있다가 시계 보기를 반복적으로 했다.     


이번 달까지는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 시간 가는 게 자꾸 조급함과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망설이면 오늘도 지나버릴 것 같다. 이상하게 집에서는 집중인 안 된다. 이것저것 뒤적이게 되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며칠 전부터 몇 번 다녀온 동네 카페에 가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저녁인데 무엇이라도 준비해 놓고 가야 할 것 같다. 큰 아이도 기말고사 준비가 한창이다.    

 

다시 소고기 뭇국이다. 짧은 시간에 가능할 정도로 번거로운 과정이 없다. 이것저것 헤맬 필요 없는 나만의 스타일대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국과 함께 저녁을 먹으라고 얘기하고는 가방을 메고 카페로 갔다. 엄마이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내 일을 한다고 집을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작지만 내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오니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를 하려는 나를 살펴보았다. 카페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과 함께 뭇국을 한 그릇 먹었다. 배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절로 손이 갔다.      

기분 좋아지는 무나물 

역시나 국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몸은 여기저기 피곤하고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편안함이 찾아온다.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땐 누군가에게 위로나 격려를 바라게 된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오롯이 나로부터 출발해야 조금씩 정리됨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당기는 뭇국을 만들고 그것을 먹는 일은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피하지 않으려는 태도였으면 좋겠다. 마무리를 위해선 직면하고, 고민하며 다시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점심에도 뭇국을 먹었다. 11월이 가기 전에 뭇국을 몇 번 더 끓일까? 그것을 들여다보면 내가 얼마나 회복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소울푸드란 이런 느낌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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