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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1. 2022

20년 만에 닭한마리 먹던 날

일요일 저녁 식탁 이야기

   

새로운 음식은 창밖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처럼 기분이 좋다. 가끔 안 가본 길을 가고 싶은 호기심처럼 음식을 만드는 일도 그랬다. 집밥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익숙해서 지루함을 전한다. 평일이라면 그것을 단순히 넘길 수 있지만, 주말은 다르다. 어제와 같은 밥상은 실망과 동시에 지나가는 휴일의 아쉬움을 더 깊게 만든다.


갑자기 그 요리가 생각났다. 카피라이터로 잠깐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건강과 뷰티 관련 회사의 잡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망설이다 도전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공부하면서 회사에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때 마감에 시달리다가 정리될 즈음에 디자이너 언니와 함께 찾은 식당이 있었다.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저마다 큰 상에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올라가 있고 양푼 같은 큰 그릇에 뭔가를 끓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하는 호기심과 동시에 적당히 찌그러져 있고 세월이 묻어난 그릇에 이상하게 끌렸다. 


닭한마리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모르는 이들에겐 닭을 한 마리 먹는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요리는 채소와 여러 가지를 넣은 육수에 닭을 끓여내는 일종의 전골과 비슷한 음식이다. 환상이던 단풍이 하루 이틀 사이에 자취를 감추고 겨울 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차가웠던 손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안경은 앞을 가릴 만큼 뿌옇게 변했다.

추억을 소환한 일요일 저녁  닭한마리


“이거 먹어봤어?”

“아니요. 전 처음 보는 건데.”

“이거 이런 날은 딱이야. 한번 먹으면 자꾸 생각날걸.”

언니의 말이 맞았다. 디자이너다운 패션 감각과 동시에 털털함을 겸비한 그는 항상 나를 챙겨주었다.  닭한마리는 그동안 경험했던 닭요리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 담백하면서도 얼큰했다. 나중에 먹었던 칼국수는 닭고기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날려줄 만큼 잘 넘어갔다. 부드러운 닭살을 새콤한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식당에 앉은 모두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하나의 메뉴에 집중한 모습도 정겨웠다.     


지난주 우리 집 밥상은 닭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때 생각해 낸 게 닭한마리였다. 20년은 훌쩍 지난 오래전 일이어서 가물가물했다. 그저 이번에도 내 맘대로 그때의 맛을 그려보기로 했다. 요리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닭고기는 볶음용으로 손질된 것을 준비했다. 먼저 닭고기를 잘 씻고는 먼저 끓는 물에 데쳤다. 이때 닭 냄새를 없애기 위해 콜라를 붓고는 5분 정도 끓인 후에 물에 고기를 한 번 더 씻어 낸다. 콜라는 얼마 전에 아이들이 치킨을 시켜 먹을 때 먹다 남은 것으로 치킨의 시간이 끝나면  찾는 이가 없다. 냉장고에 머물다 분명 버려질 것이기에 이럴 때 사용하면 요리를 깔끔하게 한다.     


고기 손질이 마무리되면 물을 적당히 부은 냄비에 대파 뿌리와 대파, 무, 대추, 말린 생강, 크게 썬 무와 함께 닭을 삶았다. 냄비에 거품이 생기면 국자로 걷어줘야 말끔한 국물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를 끓이고 나선 다른 재료가 등장할 차례다.     


옛날 먹던 그것엔 야채가 별로 없었지만  몸에 좋은 여러 가지를 넣기로 했다. 배추와 표고, 새송이, 느타리버섯에  쑥갓을 적당히 썰어 준비했다. 고기가  다 익고 국물이 우러날 즈음에는 고기를 제외한 다른 것들을 건져내고 야채를 냄비에 넣는다. 한소끔 끓여 큰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소스는 간장과 매실청, 식초를 넣은 것으로 간단히 마련했다. 깊은 맛을 위해 맑은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했다.

“와아~ 담백하다. 엄마 그동안 먹었던 닭고기와는 완전 다른 맛인데.”

“국물이 시원해서 좋다. 이런 날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야.”

아이와 남편이 번갈아 말한다. 음식을 만들고 나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고기와 야채가 어느 정도 먹어갈 즈음이면 또 다른 이벤트가 열린다. 고기만 먹기고 마무리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칼국수를 생각했다. 시판 칼국수 면을 미리 삶고 차가운 물에 씻어서 쫄깃한 면발을 유지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맑은 국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얼큰한 국물로 2부를 열었다. 때마침 배추김치를 만든 저녁이었다. 남은 김치 양념을 국물에 풀었고 면을 넣었다. 여기저기 후루룩 소리가 들린다. 칼국수에는 역시 갓 담근 김치가 최고다. 오랜만에 칼국수를 먹은 모두 신났다.     


후다닥 저녁이 끝났다. 새로운 한 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비가 살짝 땅을 적신 날, 뜨거운 국물이 어우러진 요리는 모두의 얼굴에 미소를 선물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주부인 내가 있었다. 주부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남편의 감정을 살피며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의 여러 가지를 관리하고, 정리하는 등 가족의 일상을 움직이는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20대이던 시절에는 닭한마리를 동료와 함께 먹었다. 40대 중반, 소설을 이틀 앞둔 일요일 저녁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나의 현재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련한 그 시절을 닭한마리로 떠올렸다.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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