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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2. 2022

겨울 초록 고추 끌림

이제야 알게 된 맛

  

겨울이 되면 초록이 더 좋아진다. 고향은 사계절이 초록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을이라며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나 단풍 든 거리 풍경을 선보였지만 그저 이국의 풍경 같았다. 제주 섬의 가을은 귤빛으로 물드는지만 그래도 고고한 자태를 보이는 건 초록이었다.    

 

먹는 일에서도 초록인 것들이 좋다.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던 풋고추에 마음이 간다. 언제나 초록의 고추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늦가을을 지나 소설이 될 때까지 버틴 고추는 남달랐다.      


고추의 초록색은 짙어지고 단단하다. 언제 나무에서 떨어져 누구의 식탁으로 향할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자신의 색을 버리지 않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햇살을 받으면 고추가 빨갛게 익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중에는 여전히 초록인 게 꽤 된다. 엄마가 귤을 보내면서 고추도 함께 왔다. 아버지 제사 때 고추를 즐겨 먹는다고 얘기했더니 엄마가 집에 내려가자마자 보냈다. 웬만해선 물러지지 않을 것처럼 튼튼하다. 


대형마트나 동네 마트의 고추들은 너무 가지런해서 별 매력이 없다. 농부들이 좋은 값을 받기 위해 정성 들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때로는 정이 안 간다. 엄마가 키운 우리 집 고추는 야성미가 있다. 내다 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먹을 것으로 큰 탓에 곧게 길지 않고 여기저기 좀 뒤틀리거나 바람이 스치며 쓸린 자국이 남아 있다.    

  

엄마표 고추는 청양고추처럼은 아니지만, 세상에 태어난 버틴 시간만큼인지 꽤 매운맛을 지닌 것과 그런대로 순한 것까지 다양하다. 서너 개의 고추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은 다른 음식과 잘 어울려 묘한 조화를 만들어 낸다.     


어린 시절에는 고추에 관심이 없었다. 여름이 되면 언제나 해가 떠오르기 전 밭에 갔다 오는 어머니 손에는 푸성귀가 담긴 흙 묻은 가방이 들려있었는데 고추도 빠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새벽에 대충 먹은 아침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점심은 반찬을 고루 차려서 먹었다.  그때 빠지지 않는 게 고추였다. 쌈장에 고추를 찍어서 ‘아삭’하며 먹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이 맛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이른 시간을 충분히 잘 보낸 부모님의 여유 있는 얼굴은 아름다웠다. 이제 내가 고추의 맛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부모님처럼 오롯이 고추의 맛으로만 즐기기보다는 다른 것들과 어울려 먹는다. 고추를 즐기는 방법은 부모님과는 다르지만, 그 맛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엄마가 키운 겨울 고추 

된장국이나 여러 국물 요리에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고추를 넣는다. 아침에는 고추를 채 썰어 전을 부쳤다. 고기나 참치가 들어간 동그랑땡에는 이것을 넣으면 깔끔하면서도 담백해서 자꾸 손이 간다.  


단순하지만 강하다. 어디서나 자신의 존재를 희석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고추가 잔뜩 들어간 동그랑땡을 만들었는데 아이가 한입 먹고는 먼저 알아본다.

“엄마 이거 고추 넣은 거지. 근데 맛있다. 고추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고기랑 잘 어울려.”

고기와 뒤섞여 있어도 묻히지 않고 살아 있었다. 겨울이 되어도 고추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초록의 색도 한몫한다. 가을이 올 무렵이면 시골집 길가에 고추를 널어놓고 말리는 모습이 멋지다 여긴다. 그럼에도 고추는 초록이어야 제 옷을 입은 것 같다. 고춧가루가 사라진 밥상을 상상하긴 어렵지만 진한 풋고추는 외면하기 힘들다.     


그건 아마 어떤 계절을 만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인 듯하다. 한결같음이 지루하거나 재미없다 느껴질 수도 있다. 내게는 자기를 잘 지켜내는 단단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싶어서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일 수도.      


음식을 만들다 보면 가끔 달리 보이는 게 있다. 매일 보는 것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그것과 비유하게 된다. 지난주부터 풋고추가 그랬다. 추워가는 날씨에도, 강한 햇빛에도 제 살결을 그대로 지켜내었기에 대단하다.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고추는 조금 늦게 태어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제때 꽃을 피우고 가지에 달려있었다면 지금은 초록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빨리 앞서간다고 마냥 좋아하거나 좀 늦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는 듯하다. 기다리다 보면 초록의 고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위해 살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뿐.  내일은 또 고추로 무엇을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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