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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26. 2022

따뜻 달콤 감 샐러드

가을날 아버지의 선물


  

아빠의 감 

감의 계절이다. 집을 벗어나 조금만 나가면 길마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하다. 주황색 감은 이리저리 돌려봐도 예쁘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사랑스러운 방울들. 곳곳에 벌레 먹은 자국, 누군가를 기다리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져 생을 마감하는 것까지 이 계절에만 만나는 풍경이다.     


오후 늦게 집에 감 한 상자가 도착했다. 친정집에서 보낸 아버지의 감이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아버진 과수원 한편에 감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내 방 바로 앞 화단에는 단감나무를, 과수원에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에야 제맛을 내는 감이었다.     


“나중에 이 감은 손자들에게 보여줘야지.”

왜 감나무를 심느냐는 내 물음에 아버지의 답이었다. 이제 이 나무가 30년이 다 되어간다. 묘목이던 그것은 조금씩 자라더니 이제는 제법 나이를 먹어서 가지가 하늘로 뻗어가는 단단한 나무가 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가지마다 대롱대롱 달린 감을 선물한다.  

   

상자 안에 가득한 감은 그래서 특별했다. 달콤한 맛에 절로 손이 가는 과일이지만 내게는 하늘로 간 아버지를 추억하게 했다. 이 감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내게 해주던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보낸 지 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좋았고 감사했던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아버지처럼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감은 그런 점에서 살짝 흐르는 미소가 매력적인 따뜻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     


늦가을의 감은 품격 있는 달콤함을 전한다. 사과의 아삭함과는 다른 부드러움이 있다. 잊고 있다가 엄마가 택배로 보내올 즈음이면 어린 시절로 시간을 되돌린다. 아버지도 감나무를 심을 즈음에는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고 돌발변수와 맞닥뜨리며 그것을 온전히 겪어야 하는 일.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의심치 않았던 아버지의 큰 사랑은 이 둥글둥글한 감속에 담겼다.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나 역시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가을 감 샐러드

부모가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진리다. 그건 이루기 힘든 거창하고 화려한 삶이 아니라 하루를 즐겁게 하는 일도 포함되지 않을까? 감 부자가 되는 가을이면 감 샐러드를 먹는 순간 기쁨이 찾아온다.  

    

여러 가지와 함께 어울리는 샐러드도 좋지만, 오롯이 감 하나만으로도 가을 맛을 전하는 샐러드도 제격이다. 감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얇게 썬 다음 올리브유와 식초, 혹은 발사믹과 참깨를 뿌리면 마무리되는 아주 간단한 요리다. 감 맛에 집중하면서도 과일로 먹는 것과는 다른 감의 재발견이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르니에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음악과 같은 예술작품이 주는 감정과 같다고 했다. 아버지의 감으로 만든 샐러드 역시 내게 그랬다. 최소한의 양념으로 감을 경험하면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땅을 생명터 삼아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았던 아버지의 손에는 여기저기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땅을 파서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의 열매는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오는 가을날 나를 위로해 준다. 거친 바람 소리에 싸늘한 겨울의 무게를 느끼는 날에도 이 감을 먹어야겠다. 그때는 감 샐러드 말고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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