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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21. 2023

겨울을 보내며, 꼬막

계절과 함께 사는 법

어제보다 기온은 더 내려갔다고는 하는데 내 곁에는 며칠 전부터 봄이 머무는 기분이다. 어느 계절에 머물다 보면 해야 할 것들을 지나친다. 내일 해야지 하고 미루다 시작하려 할 즈음이면 그 시절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아쉬움과 후회가 한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가 돼서야 채 한참이나 그것만을 바라본다.     


계절의 끝자락에서 그것을 붙잡고 싶어 우왕좌왕한다. 꼬막을 통해서 문득 알게 되었다. 계절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은 내 눈앞에 펼쳐진 무엇을 향해 다가갈 때 가능하다는 것. 꼬막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시장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반찬으로 만들어야지 하다 지금에야 만났다.     


뻘 모래가 묻어 있어도, 얼굴이 못난 것 같아도 정감 가는 그것의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마저도 며칠부터 아이가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지나갈 일이었다. 자꾸 듣다 보니 한 번은 식탁에 올려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일었다.      


꼬막 한 팩을 사서 저녁에 무쳐내었다.  해감을 하고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한쪽으로 저어가며 데쳤다. 꼬막 서너 개 이상이 입을 벌릴 즈음에 불을 끄고, 깨끗한 물에 씻어내어 껍데기를 한쪽만 떼어 내었다. 단단한 껍데기가 모두 사라진 꼬막은 왠지 꼬막이 아닌 것 같다.     


간장과 매실청, 참기름 고춧가루, 대파, 깨를 넣은 양념장을 섞어주었다. 비릿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은 입맛을 자극했다. 짭조름한 맛은 갯벌 바람처럼 신선하다. 무거웠던 겨울이 고개를 들어 가볍게 작별인사하는 기분이었다.    

꼬막무침

오래 미뤘던 숙제를 했다. 겨울이 떠나간다는 복잡한 심경은 잠깐 멈추었다. 언제나처럼 오랫동안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나만의 시간 속에 살아갔다. 겨울에서 봄이 오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리도 혼자 끙끙 고민할까 싶다.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맛있다는 한겨울 꼬막을 먹는 일도 막차를 탔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경험했으니 다행이다. 인터넷에선 3월까지는 괜찮다고 하니 부지런하면 몇 번은 더 식탁에 오르지 않을까. 

    

매번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아쉬움으로 한 계절을 보낸다. 귀찮아서 다음을 얘기하다 흘러가 버린 때를 붙잡지 못해서 돌아본다. 그건 누구의 말처럼 하루를 정성스럽게 소중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  강박관념에 시달릴 만큼 자신을 몰아세워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느슨한 것 또한 경계해야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실험이 될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균형의 논리를 좇는다.  하루를 위한 나와의 줄다리기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 역시 편하고 싶어서 지나쳐 버린 것들이 많다. 꼬막으로 찬을 준비하며 겨울 생활을 큰 거울 안에 소환해 비춰보았다.  추위를 뚫고 나온 냉이와 쑥과 달래를 다듬어 향긋함을 식탁에 올리는 일에 바빠져야지. 겨울을 보내며 봄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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