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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22. 2023

가볍게 가볍게 구운 배 샌드위치

봄날을  즐겁게 사는 법

'가볍게'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실천하면서 지내기는 간단치 않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일들에서 생각의 덩어리가 가벼워지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상에서 적절한 무관심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지만 중간쯤 가다 멈춰버린다. 


그러다 적정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내가 잡아둔 고민들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무심코 흘려보내야 원하는 리듬을 찾게 됨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한동안 강하게 붙들었던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지대신에 그냥 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집에서 혼자 놀았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화분에 물을 주었다. 한낮에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지 열심히 검색했다. 하고 싶은 대로 떠오르는 것들을 했다. 

구운배 샌드위치

하루 이틀을 그렇게 보내니 가볍다.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담아둔 것들을 그 안에서만 맴돌게 하는 것보다는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꺼내놓지 않기로 했다. 별다른 해법이 없는 것들에 집착하니 일상이 무거워지질 뿐이었다.


쉽고 상쾌하고, 간단하게 등 가볍게라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담겼다. 며칠간 내가 택한 게 그것에 딱 들어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울은 줄어 듣고 안정을 찾은 기분이다. 이럴 때가 돼서야 먹는 일에도 질서가 찾아온다.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몸을 생각하게 되는 것. 


주부의 점심시간은 일찍 찾아온다. 정해진 규칙이 없으니 알아서 먹으면 되지만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때다.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 집에 있던 것을 대충 차려서 먹는 게 보통이지만 다른 것을 찾기도 한다. 


기분과 행동이 긍정적으로 일치했을 때다. 간단하지만 설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냉장고에 있는 배를 꺼냈다. 사과샌드위치는 종종 만들지만 배는 처음이었다.  한두 조각 먹고 남은 배는 싱싱함을 잃은 지 오랬다. 배를 얇게 썰어서 구웠다.  과일은 굽거나 말리면 단맛이 강해진다. 


배 여러 조각을 굽고 달걀 프라이와 크림치즈에 모차렐라 치즈, 상추를 더했다. 통밀 식빵 한 조각을 구워서 야채와 계란, 치즈, 과일 순서대로 올린 오픈 샌드위치로 했다.  테이블보를 깔고 접시를 올린 다음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천천히 썰어서 먹었다. 


손을 들어 먹는 게 편하지만 배를 너무 많이 올린 까닭에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아침 운동 끝나고 오는 길에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도노 함께다. 밍밍해진 커피가 그런대로 샌드위치와 어울린다. 배는 아삭하면서도 따듯하고 적당한 달콤함이 전해오는 은은한 봄빛이다.   

  

천천히 먹기로 했다.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고 빵과 여러 재료의 느낌만을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았다.  생각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 자동적으로 여러 가지로 뻗어나간다. 이런 과정자체가 잦아질수록 일상도 무겁다. 


샌드위치였던 점심은 잠깐 스치는 기분을 잡아둔 일이었다. 식빵 한 조각을 선택한 건 빛나는 일이었다. 계란과 치즈사이에서 단연 배가 돋보였다. 구운 배는 쫄깃한 맛이 생겼다. 텁텁한 빵을 가볍게 해 준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해 보지 않았던 음식을 접시에 올리는 것. 나만 아는 즐거움의 발견이었다.  


요즘은 무엇이든 찾아서 알아봐야 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져간다. 타인의 얘기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그것이 내가 처한 상황과 비교해서 어떠한지 분석하려 한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와 일치되는 건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인데 다른 이의 의견을 통해 해법을 찾아가는 건 때로는 피하기 위한 퇴로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배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내게 즐거움과 잠깐의 행복을 주는 게 무엇보다 빠른 나를 위한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지내는 게 가볍게 사는 법이 아닐까? 그리고 그 범위를 정하는 것 역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 되는 일이다. 샌드위치 한 조각은 나를 위한 봄바람 같다.  이제부터 종종 점심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내 기분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간순간 살아보는 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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