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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23. 2023

“너는 어떠니?” 김밥

식탁에서 알게 되는 것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에서 느슨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테두리에서 바라보게 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아주 조금씩 티클만큼은 그 습성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김밥을 싸면서 그런 나를 발견했다. 우리 집에서 김밥은 찬이 마땅치 않을 때 등장한다. 매번 김밥은 익숙해서 지루할 것 같지만 새롭다.  입이 심심할 때 새우깡을 떠올리거나 작은 초콜릿 하나를 입에 물고 잠깐의 여유와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집 김밥이 그랬다.     


“김밥에 할머니가 보내준 봄나물을 넣을 생각인데 너희들도 먹을 거니?”

뻔한 답이 돌아올 걸 알면서도 던진 한마디였다. 당연히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편과 내가 먹을 것에만 나물을 넣고 나머지에는 넣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신경을 써서 불고기를  넣었고 유부와 계란이 들어간 김밥이었다. 아이들과 우리 것을 접시를 달리해서 담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똑같은 김밥이었다. 

다른 김밥

아이들이 어릴 때도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고려해서 김밥을 만든 적은  없다. 그저 가족이 함께 먹으니 통일해야 한다고 여겼다. 야채와 여러 가지를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지극한 엄마의 주장에 따라 김밥을 말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크고 굳이 이렇게 의견을 묻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원하지 않는 걸 먹으라고 강요하고픈 생각 또한 없다. 매일 학교를 다니다 만난 일요일 아침은 모두가 바라는 것들로 채워도 부족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에 올릴 때면 종종 먹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양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잘 먹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기분 또한 좋아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영양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집에서 내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몫으로 만든 김밥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비웠다. 왜 야채를 안 먹니부터 그간 오가던 일방적인 얘기가 없으니 평온했던 아침식사였다. 아이들의 접시에는 초록의 풀 대신 웃음꽃이 피었다.     


싫어하는 것을 뺀 한 접시의 김밥을 가지고 존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내가 중심이기보다는 그들을 향한 시선이 조금 머물렀다는 게 다를 뿐이다. 아이들에게 “너는 어떠니?”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이렇게 해야 좋지 않겠니?”라는 말로 내 의지에 힘을 싣기보다는 균형을 천천히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일은 종종 뜻하지 않은 선물을 전한다. 당연하다고 정의했던 여러 과정들은 꼭 그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십여 년 이상을 아이들과 아침저녁으로 밥을 함께 먹었다. 


여러 가지 음식들로 식탁을 채웠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갔다. 그 속에서 아무리 밀어붙이고 애써도 속도의 차이는 존재하고 변화 또한 쉽지 않음을 배웠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김밥을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때로는 큰 것보다 아주 작은 일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듯하다. 그때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는 각자의 결정에 달렸지만  바른 것이라는 상자에 갇혀있기보다는 좀 삐져나가도 그저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을 잘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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