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김치를 담그는 이유
그 시간이 왔다. 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진다. 어찌 보면 손 놓아도 괜찮은데 왜 그리 마음이 바빠지는지. 오늘은 꼭 마쳐야겠다고 새벽부터 마음먹었다. 며칠 전 문을 연 동네 로컬푸드마켓에 들렀다.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한 봉지 샀다.
집에 오자마다 후다닥 깨끗이 씻은 다음 천일염으로 절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적당히 숨이 죽은 것을 꺼내어 씻고 본격적인 김치 담그기 돌입이다. 얼마 전 만들어 놓은 김치 양념이 남아 있어 손 갈 일이 별로 없다. 큰 양푼에 나물과 양념, 액젓과 매실을 넣고 잘 버무리면 끝이다. 양파와 친정엄마가 보내준 노각도 넣었다. 아직은 여름 기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도톰한 노각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큰일을 해낸 기분이다. 혼자 부산을 떨고 뿌듯해한다. 마트나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서 먹어도 될 일이다. 김치가 뭐라고 그리 마음을 썼는지 모르겠다. 전업주부의 사명감과 의무감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이었을까. 워킹맘이던 시절에는 친정엄마 김치로 몇 해를 보냈다. 일을 그만두고부터는 당연히 내가 할 일로 여겼다.
가족 누구도 김치를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김치에 이토록 마음을 쓰는 건 몸에 밴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과수원 일에 바빴던 엄마였지만 단 한 번도 김치통이 비었던 적이 없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밭에서 나는 열무며 얼갈이배추 등 푸성귀로 김치를 만들었다.
아침 일찍 밭으로 나갔던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열무를 마대에 가득 담고 왔다. 비가 많은 여름, 물기를 머금은 입은 물러지고 누렇게 변하고 뿌리는 흙에 범벅되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 것을 깨끗하게 다듬으라고 하고 엄마는 다신 밭으로 갔다. 초등학생 시절 그 번거로운 것을 하는 일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식탁에 오른 김치는 푸릇푸릇한 잎이 가득한 열무가 대부분이었다. 도시락 반찬에 단골이었던 김치는 싫었지만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여린 잎과 하얀 속살이 보이는 배추김치가 좋았다. 집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김치를 담그는 까닭에 추운 겨울이나 가을, 초봄에만 만날 수 있는 나름 귀한 것이었다.
나이를 드는 까닭인지 이제는 엄마의 열무김치 맛이 그립다. 소박하면서도 단백 한 맛, 다른 재료의 접근을 불허한다. 어떤 이는 시골맛이라고 했다. 엄마의 열무김치는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꽉 차 있고 모자란 듯하면서도 완벽하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에 얼마간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는 반찬이니 온 마음을 다해 담았으리라. 엄마는 항상 김치통에 담기 전에 맛볼 것을 권했다.
“어때? 맛이 정말 없는 것 같다.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아니 엄마, 정말 맛있는데.”
이상하리만치 그 순간 김치 맛은 최고였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신비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말로는 다 못했을 무게를 알게 된다. 절로 생각에 잠기다 보면 눈물도 스르륵 흐른다. 그럴수록 엄마의 맛이 그립다. 열무김치 맛이 그러했다. 몇 해 전부터 엄마처럼 만들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비법을 물었다. 몇 번이고 그대로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맛을 흉내 낼 수 없다.
어느 날 동네 친구의 친정 김치를 선물 받았다. 초여름 열무김치였는데 딱 우리 엄마 스타일이다. 김치통을 열어 살짝 맛보는 순간 온몸에서 반응할 만큼 닮았다. 엄마의 김치는 통하는 게 있나 보다. 감동의 열무김치를 만든 어르신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기에 종종 만나면 인사를 나눈다. 항상 미소 지으며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모습이 우리 엄마와 닮은꼴이다.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를 잔뜩 물든 김치통이 바닥을 보일 때면 엄마의 걱정이 시작된다.
“비가 매일 오니 밭에 씨 뿌린 배추가 크기도 전에 다 녹아버리겠다. 김치가 다 떨어져 가는데… 돌아오는 오일장에는 아무리 바빠도 꼭 김칫거리 사러 가야겠다.”
엄마는 빈 쌀통을 채우듯 그렇게 김치통 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밥심으로 산다고들 한다. 된장국과 김치, 나물반찬이 전부이던 시골밥상을 그려보면 김치에 유독 신경 쓰는 일은 당연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매번 올랐던 김치는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는 엄마의 지극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어간 엄마의 삶이 담겼다.
난 왜 그토록 김치에 집착하는 걸까. 엄마로부터 배운 주부의 일이 몸에 익었거나 성실한 내 일상의 반복 아닐까. 김치가 없는 식탁은 왠지 외롭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다. 짜장면에 단무지가 없는 기분이다. 언제까지 비어 가는 김치통을 보면 마음이 바빠질지 모르겠다. 김치는 내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