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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3. 2023

토스트의 시간

촘촘한 하루

충분했다. 3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얻은 수확은 밀도 있게 하루를 보내게 했다. 식빵을 오랜만에 구웠다.  며칠마다 돌아오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확실한 이유가 있으니 손은 빨라지고 몸은 부지런했다. 점심때 프렌치토스트를 위한 식빵을 만들었다.     


“엄마 가게에 파는 식빵이 먹고 싶다.”

“왜? 엄마가 만들어 줄게.”

아이가 아무 말이 없다. 나름 내가 만드는 빵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의 한마디는 순간 멍하게 했다.   

  

“그냥. 요즘에는 안 먹어본 것 같아서.”

답은 단순했다. 정말 그동안 거리를 두어서 먹고 싶은 건가? 다른 뜻이 있겠지. 내 빵이 별로 마음에 안 든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돌아다녔다.     

아이의 점심, 프렌치토스트와 말차라테

아이의 한 마디가 내게 그리 충격이었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인을 찾아 나섰다. 어른이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신의 영역이라 여기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는 쉽게 지나기 힘들다.      


“엄마가 빨리 만들면 점심 전에 식빵이 다 구워질 거야. 더운데 밖에 사러 가기도 귀찮고. 오늘은 그냥 집에 걸로 먹자.”

결국엔 내가 나섰다. 덥다는 이유를 들었다. 절반은 그러하고 나머지는 복잡 미묘한 고집이었다.  

   

몇 번 했던 레시피를 꺼내었다. 집에 있는 어느 프랜차이즈 커피집 종이컵에 밀가루를 가득 담으면 250g이 나온다. 여기에 40g을 더했다. 우유 120ml에 설탕 한 숟가락, 소금과 드라이 이스트 한 티스푼,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두 숟가락 넣었다. 식초도 한 숟가락 마지막으로 더했다. 우유에 산이 들어가면 끈적한 버터밀크가 되어 부드럽고 폭신한 빵을 만날 수 있다.     


손반죽을 3분 정도하고 한 시간 발효에 들어갔다. 다시 가스를 빼고 20분을 쉬어갔다. 마지막으로 식빵 모양을 만들고 40여 분을 보내고 180도에 30분을 구웠다. 빵이 다 구워졌다는 느낌이 올 무렵 시계를 보니 11시 20분이다.     


한 김 식히자마자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네 조각으로 썰었다. 달걀과 우유, 설탕을 조금 넣고 거품기로 저은 다음  빵을 적시고 기름을 두른 팬에 구웠다. 빵 사이에 모차렐라 치즈를 끼워주었다. 노랗던 빵 표면에 드문드문 갈색을 보인다.      


태풍으로 한결 기운이 빠진 여름 태양을 반기는 냄새다. 고소하고 평화롭고, 부드럽다. 프렌치토스트 두 조각을 접시에 올리고 남은 달걀 물을 구워서 곁들였다. 자두 청에 말차라테도 함께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식탁 매트도 깔아주었다.  

아침부터 움직여 만든 식빵 

“다 됐어. 점심 먹어.”     

아침부터 시작된 일이 끝났다. 아이는 엄마의 식빵이 최고라며 칭찬을 이어간다. 아이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을 보며 한껏 기분 좋은 상태였다. 음식을 보고는 더 부풀어 올랐다.  

  

접시에 올려진 그건 모두 내 손을 거쳤다. 이거면 됐다 싶다.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자두 청과 단맛에 길드는 듯해 언젠가부터 만든 말차라테, 익숙한 스타일로 만들어진 프렌치토스트까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펼쳐 보였다. 어릴 적 어른이 되면 살아보고 싶은 일상이었다.    

  

다른 날보다 시간을 확인해 가며 움직였다. 빵을 발효하는 동안 다른 일을 했고, 다시 돌아와 반죽을 만졌다. 그 사이사이 또 다른 내 일을 해나갔다. 반복되지만 멀리할 수 없는 집안일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쌓여갔다. 그러는 사이 여유가 찾아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보다 뭔가를 하다 보면 편안함이 서서히 찾아온다.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하나로 이어져 생활은 촘촘히 연결되어 살아난다.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프렌치토스트를 위해 일정한 속도로 달려간 아침부터 점심 사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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