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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7. 2023

흔들리지 않는 감자볶음처럼

부엌에서 떠오른 생각

아침에 감자볶음을 했다. 별 찬이 없을 땐 집에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 손이 가는 대로 무엇이든 만든다. 감자는 부엌을 지켜주는 든든한 먹거리다. 감자 두 개를 씻어서 껍질을 벗긴 다음, 큼직하게 썰어서 뚝배기에 담았다.    

 

감자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십여 분이 지나니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감자가 익기 시작하면서 투명했던 빛이 진해지고 무게가 느껴진다. 감자가 익는 동안 참치 액을 조금 넣고 간을 맞췄다.   

  

젓가락을 들어 감자를 콕 눌러봐서 쏙 들어가면 다 익었다는 신호다. 마지막으로 다진 마늘과 들기름 한 숟가락을 넣어준다. 깔끔한 맛을 위해 청양고추를 반개 어슷썰기 해주고 대파는 마지막에 더했다.     


밥상에 감자볶음이 올랐다. 국물은 거의 없다. 감자에 감칠맛이 적당히 배었다. 숟가락으로 한 조각을 떠서 먹었더니 폭신폭신하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감자의 맛은 살아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    

아침 감자볶음

아이들은 감자볶음에 관심이 없다. 대신 남편과 내가 좋아한다. 정서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십 대를 지내왔다는 의미다. 어릴 적 밥상은 단출했다. 다른 무엇을 생각하기 어려웠고 당연하다 여겼다.     

아이들은 불닭 소스처럼 강하고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요리에 눈을 돌린다. 고기 없는 감자조림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이 맛을 잘 알지 못했다.     


엄마가 늦봄부터 여름까지 이것을 종종 만들었다.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으니 바쁜 생활에서 더할 나위 없는 먹거리였다. 부모님은 맛있다고 했지만 내게는 다른 무엇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지난해부터 집 간장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린 감자조림이 달리 보였다. 밥 없이도 괜찮았다. 보통 온기가 달아난 음식은  끌림이 없지만 이건 달랐다. 감자 맛은 여전했고 숟가락을 서너 번 이상 오가게 했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작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시내버스에서 감자조림에 대한 마음을 살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무엇을 더하거나 반짝거리는 것보다는 본래의 모습이 아름답다.      


낡은 돌담이나 오랫동안 엄마의 손에서 살아나간 손때 묻은 스테인리스 국자도 보기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것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어느 사이에 사라졌다.      


단순하고 가벼운 일상을 바란다. 자꾸 말하고 생각해야 원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틈만 나면 강조한다. 살아가는 모습으로는 지금 있는 그대로 현재에 머무는 일이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감자조림이 비슷하다.        


볶음에는 감자가 지닌 특징이 가득할 뿐 다른 것이 끼어들지 않는다. 날것으로 먹기 힘들어 불을 동원해서 익혔다. 너무 심심하면 제맛을 내기 어려우니 간장을 불러왔다. 아침에는 기름과 마늘, 다른 채소가 등장했지만, 감자만으로도 충분하다. 감자볶음은 흔들리지 않고 감자로 오롯이 머문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습관처럼 굳어진 시선에서 비켜나 의미를 해석하거나  일상에 비춰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족히 식탁에 오르는 감자볶음 하나로도 바라볼 것이 많았다. 부엌에서 보물을 발견한 듯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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