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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8. 2023

만두그라탱

여름방학 점심  

여름방학이 흘러간다. 처음 가졌던 마음이 무엇인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아이와 종일 지낸다. 피아노 학원이나 코바늘 뜨기 수업 가는 때가 아니면 집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밥을 챙겨야 하고 몇 분 간격으로 아이가 건네는 말에 답한다. 쉬지 않고 아이에게 열린 하루다. 잘 웃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닿지 않을 생각들이 아이 입을 통해서 나올 때 절로 웃음이 터진다. 지루한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여름 생활이다.     


점심은 언제나 제시간보다 빨리 돌아온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은 매일 똑같다. 며칠 전부터 예약해 둔 게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에게 답을 달라고 귀찮게 한다.    

 

먹고 싶은 것을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다. 다른 모든 것에도 이런 여유와 넓은 가슴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밥 먹는 일에는 진심이다. 아이도 그래서인지 심사숙고한다.     


그라탱으로 정했다. 오랜만에 다녀온 카페에서 브런치 메뉴로 감자 바질페스토 그라탱을 먹었다. 아이는 처음이라며 마음에 쏙 드는 맛이라고 몇 번을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여름날 점심 만두 그라탱

만두 그라탱으로 정했다. 냉동만두를 쪘다. 토마토와 마늘, 표고버섯, 양파를 올리브유에 볶은 다음 토마토소스를 조금 넣었다. 촉촉한 그라탱을 위해 우유도 세 숟가락 정도 넣어서 부드럽게 했다.      


사각 유리그릇에 만두 네 개를 가지런히 놓은 다음 소스를 적당히 올렸다. 다시 만두를 같은 수로 넣고 소스를 넣고 피자 치즈를 충분히 뿌려주었다. 180도 오븐 오븐에서 15분 동안 기다렸다. 치즈가 녹다 못해 아래로 흘러내린다.     


아이는 오븐에서 금방 꺼낸 그라탱을 보고는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 만두의 맛과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에 고소하면서 끈적한 치즈가 모자람이 없다. 치즈를 간식으로 챙기는 아이에게 그라탱은 말이 필요 없는 한 그릇이었다.      


점심을 위해 아침을 먹자마자 서로가 분주히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결정된 음식은 11시를 조금 넘긴 시작부터 준비에 들어가 40분이 채 안 될 무렵 완성되었다.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먹는 시간 20여 분.   

  

식탁에 앉는 시간보다 준비가 요란하다. 여름방학이 주는 즐거움이자 반복되는 내 일이다. 아이와 이처럼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을 때가 없다. 부담 없이 활발하게 서로가 생각하는 것들을 꺼내 놓는다.    

 

재료가 집에 있는 경우에는 가능한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며칠 뒤로 미룬다. 내 몸 상태가 별로 일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아쉬워하던 아이도 변하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빨라졌다. 적당히 절충하기가 통한다.     


먹는 일이어서 그런가 보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미뤄도 괜찮은 것. 오히려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 몇 시간 있다 맛보게 될 음식은 예정된 선물상자를 기다리는 기대감과 비슷하다. 날씨와 기분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그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경험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한다.     


중년이 된 지금의 내 식탁은 엄마가 어린 시절 전해주었던 음식과 연결된 게 많다. 그때의 정서가 기억 속에 남았다. 같은 요리는 아니지만, 엄마가 그렇게 했을 거라고 여겨지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그 사이사이에 전해주었던 얘기들도 남았다.      


“음식은 많이 만들지 말고 먹을 만큼만 적당히 해야 해 그래야 제맛을 느낄 수 있어.”

“다른 사람이 만든 걸 보면 어떻게 했는지 먹기 전에 생각해 보고는 집에 와서 만들었어.”

문득 엄마의 이런저런 얘기들이 떠오른다. 그때 엄마의 얼굴도 함께다. 힘겨운 날에도 자신의 일과 부엌에서 엄마 역할을 구분하려 애쓰던 진심이 내게로 왔다.     

 

아이에게 그라탱이 각인되었다. 아이는 한참을 앉아 천천히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두 번째로 맛본 그라탱의 세계에 대해서도 몇 번을 얘기했다. 말은 단지 입을 통해서 전달되는 건 아닌듯하다.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뒤 지금을 꺼내어 묻고 싶다.

“그때 여름날 그라탱 기억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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