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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1. 2023

호박잎 쌈밥

원하는 일상에 가까워질 때

내가 원하는 밥상을 차렸다. 마트에서 호박잎을 보고 먹은 마음이었는데 한참을 지나서야 실행해 옮겼다. 별일도 아닌데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빴을까? 시간이 없어서보다는 나에 대한 관심의 거리였다.     


저녁은 막내와 단둘이다. 사흘 전에 사둔 호박잎을 꺼냈다. 늦은 오후에 놀면서 호박잎 줄기에 있는 섬유질을 벗겨내었다. 줄기 끝을 한쪽으로 꺾어서 당기면 굵은 실 같은 게 따라나선다.     


이 과정을 거쳐야 부드러운 잎을 맛볼 수 있다. 어릴 적 엄마가 호박잎 국을 끓일 때면 자주 하던 일이다. 그때는 귀찮아서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지금 해보니 그런대로 재미있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일은 천천히 다가오는 멈춤의 분위기가 편하다.  


잎을 물에 씻고는 찜통에서 5분 남짓 쪄냈다. 잎에 밥 한 숟가락과 쌈장을 적당히 넣고 돌돌 말아 주었다. 바로 입으로 직행해도 되지만 접시에 놓고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식당에서 깻잎장아찌 쌈밥을 봤는데 처음엔 무언인가 할 정도로 호기심이 일었다.     

설렜던 호박잎 쌈밥

초록 잎으로 밥을 감싸니 달리 보인다. 잎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촘촘히 신경을 덜 썼는지 흑미 밥이 살짝 보인다. 그것도 어린아이 장난처럼 귀엽다. 호박잎 쌈밥 세 조각이 내 저녁이다.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다. 아이가 처음으로 만든 계란찜과 아몬드와 마늘, 꽈리고추가 들어간 멸치볶음도 놓였다. 큰 접시에 올려진 것들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먹고 싶었다.  요란한 찬을 기대하기보다는 가진 것을 좀 새롭게 해석해서 간단한 저녁을 바랐다. 많은 것을 식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가 가능하기에 무리하거나 없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현실에선 어떨까? 혼자 먹는 밥이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내 기준과 남편과 아이가 바로 보는 건 다를 때가 많다.  가족 속에 난 먹는 일에서 만큼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살핀다.


이런 이유로 종종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무게감은 가까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멀리한다. 내 스타일의 밥상은 혼자 있을 때, 그래도 에너지가 있어 움직일 때 가끔이다.     


먹지 않아도 기분이 좋다. 갑자기 사방이 어둑해지고 천둥소리가 들리는 게 금세 소낙비가 쏟아질 모양이다. 호박잎을 찌고 쌈밥을 만드는데 ‘후드득’ 사방이 난리다. 굵은 빗줄기가 열린 방문 사이로 들어올 태세다.   

  

기다렸던 밥을 먹는다는 기분에 날씨 변덕도 별 관심이 없다. 아이는 처음으로 해본 달걀찜에 혼자 감탄사를 부른다. 내가 좀 도와준 게 아쉽다고 몇 번을 말하면서 다음에는 기어코 혼자 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이다.

  

 “그래.”

한마디 하고는 하얀 접시에 담긴 세 가지 음식에 뿌듯하다. 내 저녁 식사에 집중한다. 호박잎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다. 부드럽다. 과수원 가는 길 풀 숲에서 살며시 전해오는 풀냄새와 비슷하다. 호박잎은 된장과 궁합이 맞다. 다른 때보다 천천히 손이 움직인다.   

  

소소한 것들을 내 앞에 펼쳐 보일 때 그리던 일상이 가까워진다. 호박잎 쌈밥을 먹으며 알 것 같으면서도 멀었던 가볍게 사는 것에 대해 조금 선명해진 느낌이다.    

   

“내일 택배 보낼 때 둥근 호박이랑 호박잎도 보내줄까?”

엄마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내일이면 도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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