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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4. 2023

머핀 대화

빵 굽는 수요일 

수요일이면 빵을 굽는다. 다른 날은 마음이 당길 때 가끔이지만 이날은 꼭 하려 한다. 오후에 고등학생  아이를 데리러 간다. 평소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 이날은 수업이 일찍 끝나지만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은 그냥 당연하다 여기며 별생각이 없었다. 여름방학 무렵부터 집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학원가는 아이 모습이 자꾸 신경 쓰였다.      


운전은 내게 큰 산이다. 장롱면허를 탈출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보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아이 학교로 갈 때는 채 4시가 되지 않을 무렵이다. 도로는 그런대로 한산했고 천천히 조심해서 가면 할만했다.      


개학 후에 바로 시작해 세 번을 다녀왔다. 아이가 어느 날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데 꼬르륵 소리 때문에 부끄러워 혼났다며 지나는 말을 했다. 그때는 흘려 들었는데 문득 학교로 가려니 떠올랐다.  먹거리를 챙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고구마 파운드를 가지고 갔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대충 치운 다음 빵을 만들었다. 그다음 주는 편의점에서 미니 호떡을 샀다. 더운 날씨와 몸 상태가 별로여서 어쩔 수 없었다.      

단호박과 머핀

이번에는 단호박 머핀으로 정했다. 단호박에 자꾸 손이 간다. 제철이 되었다는 의미다. 1500원짜리 단호박 하나를 샀다. 작지만 단단하다. 거친 껍질 안에 숨겨진 속살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예쁜 색을 간직하나 싶다. 햇볕이 주는 에너지가 단단한 호박에 콕콕 박혔다.      


단호박 껍질을 벗기고 대충 썰어서 전자레인지에 놓고 사분을 돌렸다. 적당히 촉촉이 잘 익었다. 우유와 버터, 설탕, 달걀을 넣고 블렌더로 돌려준 다음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섞고는 마지막으로 호박을 넣었다.     


오랜만에 머핀 틀을 꺼냈다. 얼마나 됐는지도 모를 만큼 손때가 묻었다. 한참 회사를 다닐 때와 그만두고 나서 간혹 사용했으니 족히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두 숟가락씩 떠 넣었다.    

  

오븐에서 삼십여 분을 보내니 머핀 여섯 개가 완성되었다. 두 시간 후, 빵을 보고는 아이가 어떤 반응일지 벌써 들뜬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다른 이의 반응은 동기부여가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것 같다.   

   

“통 열어볼래? 단호박 머핀이야.”

“엄마, 나 주려고 만든 거야?”

“당연하지. 학원 가면 배고프잖아. ”

매번 이런 비슷한 말이 오간다. 긴장한 듯 표정 없던 아이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다.  학교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순식간에 빵이 사라졌다.   


“엄마 머핀 역대급이야.”

짧은 한 줄 칭찬이다.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탁구공을 주고받듯 이어진다. 아이를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짧은 한때가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얘기가 오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물처럼 흐른다. 


묻기도 전에 아이가 먼저 말을 한다. 급식 얘기며, 선생님에 대한 불만, 친구들과 벌어진 일까지 학교 생활이 라디오 드라마처럼 이어진다. 조용한 아이가 수다쟁이가 된다.      


그동안은 원할 때 하는 즉흥적인 빵 굽기였다. 이제 수요일은 빵 굽는 날로 정했다.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려 했는지 돌아보면 욕심이 앞섰던 일이 많다. 거리를 두고 아이를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 수요일이면  떨리는 마음으로 빵을 옆에 두고 운전대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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