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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5. 2023

노각김치

여름이 지나갈 때

여름이 지나는 느낌이 들면 노각이 맛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집 밖을 나가는 일조차 망설여질 때는 초록이 가득한 걸 최고로 여긴다. 장을 볼 때마다 빛나는 그 색을 가진 채소들이 어디에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핀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거실을 중심으로 집안을 오가는 바람결에 몽롱했던 정신이 깨어날 만큼이다. 며칠 전 엄마가 보내준 여름 채소 꾸러미에 노각 몇 개가 담겼다.     


아침에 하나를 꺼내 김치를 만들었다. 조선 오이가 충분히 익어서 단단한 껍질옷을 입은 노각. 그물 모양 껍질은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엄마가 과수원 한 편에선 키운 오이는 희미한 초록이 스칠 뿐 누렇게 변했다. 여름 용광로 같던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변을 쓸어갈 것 같던 폭우도 견디어 낸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이걸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다.     

껍질을 벗기고 굵은 씨를 숟가락으로 긁어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5분 남짓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냈다. 오래전 만들어 놓은 김치 양념이 있어 한 숟가락 떠놓고 손으로 조몰락거렸다. 멸치액젓과 매실청, 고춧가루, 양파와 마늘, 간 배까지 제법 여러 가지가 들어간 빨간 양념은 노각과 합이 잘 맞는다.     

아침 노각김치

여름에는 당연히 밭에서 이슬 맞으며 자란 싱싱하고 여린 오이를 즐겨 먹었다. 그러다 주인 눈에 띄지 않은 오이는 늙어버렸다. 엄마는 그 오이를 다음 해를 기약하면서 씨를 받기 위해 한참을 두었다 따곤 했다.    

 

어릴 적 노각은 별로였다. 첫눈에 들어오는 색부터 다른 것들과는 구별된 묵직한 모습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밭에서 몇 개를 가져와도 관심이 없다. 냉국으로 밥상에 오르면 겨우 몇 숟가락 먹을 뿐이었다.       


몇 해 전부터 퉁퉁 부어서 햇볕에 덴 듯 한 이것을 가을을 기다릴 무렵 습관처럼 찾는다. 여름을 달리다 한숨 돌릴 즈음이면 노각이 나올 때가 됐음을 직감한다. 여름이 기울었다는 뜻이며, 매일 먹던 열무김치에서 다른 걸 먹고 싶은 마음이다. 


접시에 담긴 노각 김치가 유독 빨갛다. 고춧물이 어느새 들어서 한참을 두었다 꺼낸 것 같다. 아삭함보다는 쫄깃함이 입을 즐겁게 한다. 


노각의 ‘노(老)’에는 세련됨 대신 묵묵함에서 전해지는 깊음이 있다. 노각 김치를 한두 번 만들면 가을이 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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