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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28. 2023

둥근 호박전 벗어나기

변화를 찾아가는 일 

애호박 부자가 됐다. 얼마 전까지 집에 채소 부족이었다. 엄마가 호박과 가지 콩잎 등 몇 가지를 챙겨 택배로 보내주었다. 이틀 후에 위층 사는 언니까지 같은 것을 한 봉지에 담아 건넸다.  

    

채소를 정리해 냉장고에 담으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급해진다. 싱싱할 때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익숙한 애호박 요리를 떠올린다. 전과 찌개, 부침 정도다.      


유튜브에도 들어갔다. 다양한 요리가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두 개를 보는데 피곤하다. 노트북을 덮었다. 결론은 떠오르는 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쉬운 것부터 했다. 

    

둥근 호박전을 벗어나기로 했다. 언젠가 호박을 길게 잘라 요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호박 양끝을 정리한 다음 길게 세로로 썰었다. 허브 소금을 뿌리고 5분 정도 두었다가 평소 하던 대로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부쳐내었다.      


호박을 옆으로 눕혀 둥글게 썰었던 것에서 세로로 자르는 법을 택했을 뿐인데 맛은 천지 차이다. 강한 허브향은 애호박과 이질적인 듯한데 은근히  조화롭다. 오이처럼 긴 전은 스테이크를 먹는 듯하다.      

애호박 프리타타와 전

아침에는 애호박을 채 썰어 이탈리아 오믈렛, 프리타타로 했다. 애호박과 파프리카 양파를 채 썰어 함께 볶은 다음 계란물을 부어 오븐에 구웠다. 어제저녁에 이어 아침까지 다른 애호박 요리를 올렸다. 

  

길고 통통한 전은 여유가 흐르면서 고급스러웠고, 오믈렛은 부드러웠고 듬직했다. 애호박이 계란 속에 콕콕 박혔다.      


애호박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이리도 궁리해 본 적이 없다. 익숙한 대로  모범답안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따라가던 요리였다.  

   

변화를 주는 건 그게 무엇이든 간에 평소와는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어떤 것과 함께 해야 어울릴지, 그동안 먹었던 것과는 어떻게 다른 조리법을 선택해야 할지부터 애호박을 두고 이리저리 따져보았다.     


집에 들어온 먹거리는 온전할 때 제대로 먹으려 한다. 때때로 냉장고에서 흐물흐물 썩어가는 것을 발견할 때면 불편하다. 무엇을 하다 늦게 알게 되었을까 자책하다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기억해 두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분명히 달라 보인다. 일상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세밀함이 있어야 한다. 애호박은 그래서 처음부터 부지런히 방법을 찾았다.


숨 쉬지 못할 듯 비닐이 꽉 끼어 있는 듯한 마트 애호박을 만나다 밭에서 자란 여름 애호박은 자유로웠다. 자기가 크고 싶은 대로다. 비뚤비뚤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났고, 그 자리에 딱지처럼 굳은살이 생겼다.  

    

많이 갖고 있다는 건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문이다. 애호박도 그랬다. 같은 호박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접시 위에 놓였다. 

    

새로운 접근은 크게 보면 어렵다.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허우적거리다 만다. 실상 다름은 아주 작은 것 하나에서도 가능했다. 모양만 달리 했을 뿐인데도 잠깐씩 즐거웠고 감탄하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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