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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31. 2023

새벽 게맛살

 샌드위치로 만나고 싶던 시간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일 년 동안 학교방송국 활동을 했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1학기 마지막 평가회를 준비하면서 학교에서 밤을 새웠다.

오이 게맛살 샌드위치

미리 준비해야 하지만 임박해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이 몰아쳐서 했다. 그날도 정신없이 기사를 쓰고 연습했다. 사발면이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양식이었다. 이날은 부스러기조차 안 보였다.     


한 친구가 게맛살 작은 봉지를 어디서 꺼내왔다.  선배가 놓고 간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요리되지 않은 맛살을 맛봤다. 동기 서너 명이 우르르 모여서 기다란 맛살을 산해진미처럼 먹었다. 게맛살이 확실히 각인되는 날이었다.     


시장 보는 일이 중요 일과가 되고부터는 마트 게맛살 판매대를 지날 때면 종종 멈춘다. 며칠 전에는 문득 그때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들 어떻게 변했고,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했다.      


대학 시절이 드문드문 살아나더니 게맛살로 정점을 찍었다. 그것으로 무엇이라도 만들고 싶어졌다. 점심에 맛살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아침부터 식빵 반죽을 하고, 점심 무렵에야 빵이 구워졌다.      


아직 식지도 않은 빵을 썰었다. 오이는 채 썰어서 소금을 조금 뿌렸다가 꼭 짜주었다. 마요네즈에 마늘 간 것, 식초와 꿀을 조금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오이와 맛살에 소스를  넣고 버무려 빵에 올렸다.     


잠도 잊은 채 열정이던 그때가 불현듯 떠올라 생각해 낸 메뉴였지만 그 시절로 데려가 주지는 않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 게맛살은 텁텁한 느낌이 먼저였다. 친구들 얼굴 또한 아련해질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이 참 어렵다. 어느 시점에선 더할 나위 없이 끈끈했지만 사는 공간과 하는 일이 제각각이면 서서히 멀어져 간다. 반복되는 듯하지만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장애물을 만나 그것을 건너다보면 잊혔다. 자연스럽다 여기면서도 아쉽다.      


게맛살에 정이 가는 건 깜깜한 어둠을 보내고 아침이 오는 것도 모른 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렸던 친구들과 함께해서다. 음식은 공간과 시간,  같이했던 사람과 더불어 자리를 잡는다. 


그건 음식에 대한 기분이나 감각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전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서로 통했고, 기억되는지에 따라 비례한다.     

아침부터 준비한 식빵 

살짝 미소 짓게 하는 대학시절을 느껴보고 싶어서 아침부터 열심히 움직였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잠깐보다는 빵을 반죽하고 발효를 거쳐,  구워내는 게 과정이 전체의 절반이었다. 


샌드위치 맛을 상상하며 없어서는 안 될 식빵을 준비하는 두 시간 반은 규칙적으로 20대를 떠올렸다.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이 목적지에 도착한 그때보다 기분 좋은 것처럼 그랬다. 


샌드위치를 먹으면 묽어진 그때 감정이 조금 채워질까 싶었다. 연락처를 알아내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열정은 없다. 감상하고 더듬어보는 정도, 거기까지가 추억을 만나는 내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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