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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1. 2023

꼬마 김밥 아닌 중간 김밥

어설퍼 보이지만 괜찮아

아침은 내 마음대로, 저녁은 집안 여론을 의식한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정말 아이가 원하는 걸 해 줄 생각인지 습관인지는 판단이 어렵다. 남편은 때때로 야근을 하고 차려주는 대로 별말 없이 먹는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기에 저녁 또한 급식으로 해결한다. 매일 저녁 막내와 마주한다.    

  

“엄마, 꼬마 김밥 가능해?”

아이가 갑자기 김밥 얘기를 꺼냈다. 집에선 꼬마 김밥을 만든 적이 별로 없다. 일반적인 김밥에서 4분의 일 정도로 크기를 작게 한 것. 아이가 말한 메뉴로 정했다. 그렇다고 재료가 준비된 것도 없다.    

  

그 시점에 가능한 것들로  만들었다. 지단과 오이고추 비엔나소시지 조림 두 가지만 넣었다. 얼마 전부터 김밥은 돌김으로 했다. 친정엄마가 보내준  양이 상당해서 빨리 먹어야 했다. 돌김은 숭숭 구멍이 뚫려 성글다.


자연스러운 무늬를 떠올리듯 하는 이 김은 방심하면 언제나 흰 쌀알이나 재료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그런데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집에서 먹는 김밥의 자유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김밥 본연의 맛은 유지하니 문제 되지 않는다.

      

꼬마김밥을 생각했는데 김밥은 그보다는 큰 중간 김밥이었다. 김을 사 등분해야 하는데 김에 난 구멍 때문에 이 등분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김밥이 식탁에 올랐으니 기분 좋다. 혹시나 누구라도 찾아온다면 선뜻 내놓기 힘든, 어설퍼 보이는 것이었다.      

중간김밥

이게 김밥이 지닌 매력 아닌가 싶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것. 국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면 김으로 감싸주면 김밥이 탄생한다. 그래서 종종  밥이 귀찮을 땐 김밥을 떠올리고 식탁에 올린다.     


학교에서 빨리 돌아오는 날 학원 가기 전에 떡볶이를 먹겠다는 큰아이와 김밥을 얘기한 막내까지 두 아이를 만족시켜야 했다.  가능한 한 빨리 편하게 김밥을 준비했고 이어 떡볶이를 했다. 다행히 집에 냉동된 떡이 있었다. 달걀도 삶았다. 시험 본 날 정신없는 아이를 위한 응원 같은 거였다.      


월요일에 갑작스럽게 속이 탈 나면서 힘들었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다 나은 것처럼 가볍다. 엄마이기에 해야 하는 일을 30여분 동안 몰입했다.  병원을 가니 의사 선생님은 심각하지 않은 위경련 같다고 했다.

 

약을 먹고, 사나흘이면 괜찮아질 거라 해서 별 신경을 쓰지는 않았는데 몸은 그저 그랬다. 날씨까지 한여름이라 기운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막상 저녁 준비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그런 건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 해야 할 일에만 몰두했다.  몸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아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미안했다. 그러고 보면 상황의 전환을 가져오는 건 소소한 일인 듯하다.    

 

집 안에 머물다 밖에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다시 무엇을 시작할 동기를 얻는다.  때로는 내게로 집중하기보다 다른 곳으로 멀리 바라보는 게 나를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김밥은 영원한 내 사랑 같은 음식이다. 소박해도 김으로 감싸고 나면 언제나 새로운 맛을 전한다. 김밥이 지닌 탁월함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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