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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3. 2023

달콤 씁쓸한 프렌치토스트

간식 만들다 이런 생각

어린 시절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 영역에서 살아 움직인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동력이 될 때도 있다. 충분한 것보다는 결핍에서 오는 것들은 더욱 구체적이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눈이 절로 감길 정도로 피곤했다. 한 30분을 자고 정신없이 일어났다. 어제부터 얘기해 둔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유가 없다. 평소 같으면 다음으로 미룰 일이지만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부터 반죽해 만든 식빵은 하루를 보내서 그런지 잘 썰린다. 오후에는 큰아이를 학교로 데리러 가는 날이다.  간식이 필요하다. 프렌치토스트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적당한 두께로 썬 식빵에 달걀 두 개와 우유, 연유를 부어 잘 섞은 다음 빵을 적셨다. 빵 사이에 모차렐라 치즈도 끼워 넣었다. 카놀라유로 갈색이 될 때까지 구웠다.


제법 여러 조각이 완성되었다.  접시에 놓고 식힌 다음 아이에게 가져갈 것을 담았다. 토스트 두 조각에 샤인머스킷과 방울토마토까지 함께다. 유리그릇에 빵을 담고  베이킹할 때 사용하는 유산지를 깔고 과일을 올리니 모양이 살아난다.     


내가 원했던 그림이 완성되었다. 고등학교시절 우리 반에는 도시락을 예쁘게 싸고 오는 친구가 있었다. 벌써 30년 전임에도 함박스테이크에 방울토마토 파슬리 조각을 얹어놓은 점심을 가져왔다. 

프렌치토스트와 포도, 토마토

친구가 도시락을 열기도 전에 아이들이 몰려온다.

“한번 먹어봐도 돼?”

몇몇 아이가 도시락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정작 주인인 그가 먹을게 거의 남지 않았을 정도다. 어느 잡지에서 봤음 직한 친구의 그것이 부러웠다.     


내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하고 있었다. 내 도시락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 시절부터 음식을 만드는 일에 눈떴다. 친구 엄마는 어떻게 저런 맛 난 것들을 만드는지 궁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팥소가 들어가 롤 찰떡을 간식으로 가져왔다. 적당히 차가우면서도 쫀득한 맛은 황홀할 정도였다. 그렇게 친구의 점심 도시락은 엄마가 된 후 내 생활에서 영향을 미쳤다. 가능하면 예쁘고 정성스럽게, 감탄하는 맛을 지닌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    

 

간식은 그런 멀고 먼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가 탄생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서 만든 토스트였다. 프렌치토스트는 퍼즐 맞추듯 모자란 부분을 아주 조금씩 맞춰가는 작업이었다. 


우유를 사러 갈까 망설이는 잠시 동안은  지나치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프렌치토스트는 그런 소박한 적극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간절했던 달콤 씁쓸한 기억 한편을 소환했다. 그때는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는 기분이 무거웠던 몸을 가볍게 한다. 달걀 물을 입고 노란색이었던 빵이 갈색으로 천천히 구워지는 과정은  기운 나게 했다.      


누구를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지만 결국은 나로 향하는 일이 많다. 간식이 목적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아이는 유리통 뚜껑을 열고는 얼굴이 환해진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순식간에 비웠다. 순간 찾아왔던 복잡한 고민거리도 잠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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