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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4. 2023

여름아 안녕, 냉파스타 샐러드

가을맞이 점심


아침부터 떠오른 음식이었다. 냉파스타 샐러드다. 여름 아니 그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단지 흘려보내며 내일을 기약하는 평소처럼 지냈다.     


어제 새벽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더니 제법 가을 기운이 난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시기다. 그럼에도 이젠 정말 여름과 이별해야 할 것 같다. 덥다고 아우성쳤는데 시간은 언제나 제 속도로 흘러갔나 보다.  


가을을 맞이하기 전에 여름을 잘 정리해서 보내고 싶다. 이번 여름은 어떠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냥 지났다. 덥다는 이유로 집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꾸준한 건 밥 먹는 일이었고, 부엌에서 그만큼 오래 지냈다.     


서늘한 날씨 때문인지 나를 잠깐씩 돌아보는 여유가 찾아온다. 원하는 일이 무얼까 하고 떠올려보니 먹는 게 가장 먼저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손쉽게 가능한 것이어서 그런 듯하다. 모두가 집을 비운 낮에 그것을 만들기로 했다.     


아침부터 그림을 그려놓았다. 삶은 파스타면과 달걀, 식탁 위에 외롭게 있는 방울토마토 두 알과 사과 반쪽, 여름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던 자두 청 몇 숟가락이 중요 재료다. 

  

집 안을 정리하고 11시 반이 훌쩍 지날 무렵부터 조리했다. 파스타면과 달걀을 준비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머지는 씻고 썰어두기만 하면 끝이다. 소스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 올리브유와 매실청에 소금을 조금 넣고 들깻가루를 더한 다음 휘휘 저었다. 마지막으로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뿌려주었다.     

냉파스타 샐러드 

샐러드를 버무리니 기다리던 색이 나온다. ‘프릴 아이스’라는 샐러드용 채소는 촉촉한 물기를 머금어 신선함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처음 경험하는 이 것에서 텔레비전 광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빨강 토마토와 사과의 연한 노랑,  자두의 투명한 갈색, 파스타 면의 부드러움까지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맛도 역시  미소 짓게 했다.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다. 자두 청에서 오는 달콤함과 올리브유 특유의 쌉싸름한 고소함, 들깻가루가 알려주는 야생의 자유로움까지 각각의 특징이 살아있다.     


이 순간  깨어 있는 느낌이었다. 샐러드는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내게 말 걸어오던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그건 속도라는 단어를 꺼내기 어색하리만큼 천천히  포크를 움직인 일에서 전해왔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먹을 것을 정신없이 찾는다. 냉장고는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가 모여 있는 서랍장 여닫기를 수차례 한다.  처음에는 쿠키 하나만 먹어야지 했던 게 시간이 지날수록 서너 개에서 대여섯 개로 늘어난다. 


달콤한 것을 입에 가져가면 무거운 감정들이 잊힌다. 잠시 후에 정직하게  다시 찾아오는 힘든 마음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부지런한 나로 변하게 한다.    

 

오래전부터 반복된 일이지만 얼마 전에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게 먹는 일은 심리적인 것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의식 없이 하는 이런 행동은 먹고 나서는 행복한 감정 없이 또 그랬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알랭 드 보통이 《사유 식탁》에서 언급한 것처럼 음식은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가다듬는 데는 도움이 된다. 아침에 공원을 돌며 샐러드 파스타를 먹을 생각에 설레었다.


점심을 보내기 위해 오전에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다른 어떤 것도 입에 넣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으니 점심 전에 무엇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지 않았다.     


냉파스타 샐러드를 먹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 본다. 내년에도 여름과 안녕할 즈음에 이 음식을 혼자 먹어야겠다. 그럼  한 계절을 어떻게 보내었는지 살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가능한 대상을 가볍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 간단한 한 그릇을 만들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보면 대답은 “없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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