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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8. 2023

가을 선물, 고구마줄기

현관문에 걸린 건

외출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렸는데 문고리에 종이쇼핑백이 걸렸다. 순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짐작 가는 얼굴이 있다. 얼른 가방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식탁 위에 놓고 열어보니 고구마줄기가 치킨집 비닐봉지에 가득 담겼다.   

  

이것을 갖다 놓은 이를 알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니다 다를까 예상대로다. 휴대전화를 들어 주인공의 번호를 눌렀다. 친정아버지가 농사지은 거라며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고구마줄기 요리를 해본 이는 알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게 남아 있다. 

“줄기 껍질 벗기고 데쳐서 김치나 나물로 먹으면 되죠?”

“아, 그게 다 벗긴 거예요. 그냥 요리해도 돼요.”

처음 느꼈던 감사함 보다 더 큰 산으로 감동이 밀려왔다. 

    

고구마줄기는 그대로 먹으면 질겨서 제맛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먹기 전에 줄기를 한쪽 방향으로 꺾어서 섬유질 껍질을 벗겨줘야 한다. 단순하지만 작은 줄기 하나하나를 들어서 반복해야 해서 간단치 않다. 손에는 어느 염색 장인의 손처럼 잔뜩 진액이 묻어 갈색으로 변한다.    

 

손을 예민하게 하고 강약을 조절하면서 벗겨야 중간에 끊김 없이 줄기 끝까지 성공적으로 벗길 수 있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 허리도 아프고 손은 물론 어깨도 뻐근하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내게 주었으니 채소를 나눠 먹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고구마줄기 김치와 볶음

좋은 먹거리가 있으면 항상 이웃이나 친척들과 나누던 엄마가 스쳤다. 엄마는 어릴 때무터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일에 정성을 강조했다. 아무리 작아도 마음을 담기 위해서 귤이든 무엇이든 간에 좋은 것을 골라서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보냈다. 어린 마음에는 우리가 받는 것보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전하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건 되돌려 받기 위한 애씀이 아니고 당연히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정성’이란 단어를 쉽게 올리기 어렵다. 지극한 마음을 품고 있어 간단한 행동하나를 일컫기는 가볍다 여겨진다. 그 정서가 오롯이 다가올 때 가슴 저 끝에서 찡한 무엇이 올라온다. 친구가 전한 고구마 줄기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에 가을 선물을 받은 듯했다. 집에서 먹을 것과 나눠줄 것까지 다 손질하려 했으면 족히 얼마 동안은 다른 것 하지 않고 집중해서 다듬었을 터였다. 그렇게 나온 귀한 것을 내게 한가득 주는 넓은 품을  배운다.


다음날 아침에 고구마줄기 나물을 만들었다. 끓는 물에 굵은소금을 넣고 씻은 고구마 줄기를 한 3~4분 데치고 차가운 물로 식혔다. 먹기 좋은 크기로 반을 자른다. 마늘 다진 것과 집 간장과 양조간장을 넣고 조물거린다음 식용유를 두른 팬에서 살짝 볶으고 들깻가루를 뿌려주었다.     


갓 지은 밥에 고구마줄기를 한가닥 가져가니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적당히 간이 배어 먹는 즐거움이 커진다. 아침에 먹고도 작은 통에 하나 가득이었다. 이럴 땐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운동에서 돌아와서는 김치를 담갔다. 데친 고구마줄기를 찬물에 샤워시킨 다음 얼마 전에 만들어 둔 김치양념이 있어서 버무리는 것으로 김치 만들기가 끝났다. 조금 싱거운 듯해서 소금을 적당히 뿌리고는 투명유리그릇에 담았다. 김치는 비릿한 바다내음 같은 액젓향이 올라오면서 아삭했다. 연한 갈색을 보이는 고구마줄기는 초록에서 서서히 가을준비에 나선 어느 텃밭 같다.

 

고구마줄기 담긴 비닐봉지의 묵직함은 그의 진심의 무게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얘기를 했더니 한마디 했다.

“엄마 우리도 뭐 주어야지.”

“글쎄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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