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Nov 13. 2023

오랜만 샌드위치

일상 속 잊기와 기억하기 

한 달 만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마트 식빵을 사본 지가 족히 3~4개월은 된 듯했다. 빵을 굽는다는 이유로 제과점에 발을 끊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내가 만드는 게 맛있고 몸에 좋다는 이유로 무장된 상태였다.


빵을 굽는 일은 온전한 정신이 있거나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마음이 산란할 때도 그것에 빠지지 않고 오롯이 서기 위해 빵을 굽기도 한다. 그건 그나마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며칠간은 다른 것을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이른 아침 동네 마트에 가서 식빵 봉지를 드는 기분은 가벼웠다. 반죽과 발효, 굽기까지 걸리는 3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 한 봉지면 지금 필요한 것을 순식간에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무게가 될 때도 많다. 그것을 적절히 균형 있게 다뤄야 하는데 그 또한 간단치 않다. 이러해야 한다는 바람이 커질 땐 다른 것을 돌아보기 힘들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하지만 종종 먼 이야기다. 토요일 늦잠을 잔 아이들은 배가 고픈 모양이다. 마트에 다녀오니 우리 집 둥근 벽시계가 10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샌드위치 만들기에 돌입했다.     

 

달걀은 지단형태로 부쳤고, 햄도 구워 4조각을 만들었다. 파프리카도 채 썰어서 올리브유와 소금을 살짝 뿌린 다음 구웠다. 사과는 슬라이스 했다. 모차렐라 치즈도 냉장고에서 꺼냈다. 발사믹과 올리브유, 꿀을 넣은 소스까지 준비했다.   

  

부엌에서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시기가 있다. 분명 저 너머 거실은 시끄러운데 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 같다.  가끔 ‘전투적으로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샌드위치를 만드는 내 모습이 그랬다.   

  

큰아이는 샌드위치 두 개, 막내는 한 개를 만들어 주었다. 빨리하다 보면 주변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 마치 시간과 싸움하듯 하는 요리는 다음 과정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움직일 뿐이다. 다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대각선 방향으로 썰었다. 빵 속살사이로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지층을 그리듯 선명한 예쁜 색을 드러내었다. 

아이는 “역대급이야”라는 한마디로 잠깐 정신없음을 달래준다. 아이들이 흥얼대면서 먹기 시작할 무렵 내 것도 하나 만들었다.  있는 것으로만, 간단하게다. 달달한 딸기잼을 듬뿍 발랐다. 욕심이 과한 탓인지 단맛이 여러 맛을 가려서 유감이었다. 그럼에도 피곤이 밀려올 무렵 달콤함은  상당한 특효약이 되었다.     


식탁과 도마 주변은 난리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묻고 싶을 만큼이다. 다행히도 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요리였기에 빨리 정리되었다. 샌드위치는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남 같은  반가움이었다.  빵을 한 조각 베어 물면서 “얼마 만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맛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중에 요리사의 솜씨를 우선순위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한편으론 좋아하지만 경험하는 빈도가 적다면 그 자체로 만족감을 높여준다. 나처럼 초보가 가능한 빵의 수준이라는 것은 뭐라 하기 난감할 때도 있다. 억지스럽게 만족하지 않으면 실망이 커질 때도 있다. 

 

전문가가 고심해 만든  빵은 부드러웠다. 내가 아직 닿지 못한 어느 세계를 보여주었다. 아주 고급지거나 유명한 제품이 아니었음에도 분명히 내 것과 구별되었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은 그때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간격을 두고 마주한 식빵이라 더욱 그랬다.


꾸준히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때로는 ‘가끔’이 주는 매력이 더 크다. 매일 혹은 적당한 간격으로 무엇을 하다 보면 자세히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익숙해져 놓치기도 한다. 한 달 만에 먹은 샌드위치는 내가 만드는 샌드위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그사이에 의식하지 못하는 ‘그리움’이 녹아있다. 매일 다른 하루를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기며 살아가다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게 된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나면 몰랐던 욕구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그때 다가온 음식은 보통정도면 괜찮은 맛이지  않을까? 


우리가 흘려보내고 사는 건 얼마나 많을까 싶다. 간단하게 먹는 샌드위치조차 30여 일을 훌쩍 넘길 만큼 거리를 두었다. 그건 내가 만들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다른 이유가 크게 작용하진 않지만 말이다. 알고 있거나 해봤다는 이유로 절로 잊혀 가는 것들을 떠올린다. 


도전의식을 불태울 것을 찾으며 쉽게 지쳐버리기보단 알고 있지만 소원해진 것을  꺼내어 삶으로 불러들이는 일도 고려해 봐야 할 듯하다.  매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공기 속으로 사라진 것들, 나와 가까운 것들을 떠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그린레몬 그리고 케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