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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8. 2023

고구마빵, 좋거나 별로 거나

다름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몬 향이 나기 시작했다. 빵이 다 되어가고 있나 보다. 빵을 구우며 하루를 만들어가려 애쓰는 중이다. 밤이면 눈이 내다고 했는데 어제보다 쌀쌀하다. 점심 무렵에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지면서 몸도 느려진다. 다분히 계획적이라 보일 만큼 오전 시간을 날려 보낸다.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꽃병에 물도 갈아주고 화분도 살폈다. 어슬렁거림의 종착영은  텔레비전도 보기다. 한동안 거래를 두었는데 며칠 전부터 십 년 다되어 가는 오래전 드라마에 빠졌다. 대략적인 방송시간을 알고 있다가 그즈음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그리워함인지도 모른다. 그땐 지금보다 단순하게 살았나 살펴보면 꼭 그런 것 아니었는데 자꾸 옛날을 돌아본다. 지금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었나 싶다.   

고구마빵

오후 1시가 다 되어가니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는 다급함이 찾아온다.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습관 같은 행동이다. 하루를 보냈다는 무슨 흔적이라도 남겨야 할 듯하다.     


이틀 전에 고구마 빵을 만들었는데 금세 다 먹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부드러운 그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이들이 반기니 자꾸 마음이 가서 다시 고구마 두 개를 가져왔다.     


엄마의 고구마는 작은 아이의 얼굴만 할 정도로 크다. 일주일 전쯤에 택배로 한 상자가 왔다. 간식을 고민할 때면 제일 먼저 고구마가 떠오른다.   

   

무릎이 안 좋아 앉고 일어서기도 힘들어하는 엄마가 땀 흘려 지은 농사의 결실이다. 어느 일요일에 언니가 아침부터 사진을 보내왔다. 엄마가 과수원 한편에 있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모습이 담겼다.


엄마가 키운 것들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찰 때가 많다. 얼마나 오랫동안 받아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 같은 것도 함께다. 그래서 무엇하나 버려선 안 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많아서 부담이다.  이웃들과 나눔을 하기도 애매하다. 대부분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짓기에 늦가을이면 수확한 것들이 모여든다.    


요리에 고구마를 자주 올리기로 했다. 몸에도 좋은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예쁘게 만들 만큼 큰 에너지가 없는 날이다. 무엇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이럴 땐 대충 한다. 고구마를 찌고 으깬 다음 밀가루를 조금 넣었고 베이킹파우더도 더했다. 고구마가 들어 있는 큰 볼에 달걀 하나와 우유, 생크림을 조금 넣고  섞었다.    


부드러운 고구마와 그 속에 은은한 단맛이 함께 하니 그럭저럭 괜찮은 빵이 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노란 고구마 속살이었다. 엄마가 농사지은 고구마는 땅의 성질 때문인지 처음에는 좀 노란빛을 보이다가 찌고 나면 회색으로 변한다.     

고구마와 엄마

얼핏 보면 그리 먹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원래 그러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한다. 빵이 다 되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빵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시골 고구마케이크'라고 부를까 싶다.  


소박하고 여기저기 비뚤비꿀 한 모양새는 잠시 머뭇거리게 한다. 그래도 한 조각을 먹으면 그때부터는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으면 찐 고구마가 슈크림처럼 다가온다


벌써 세 번째로 만드는 고구마 빵이다. 나는 좀 물컹거려서, 쫄깃한 맛이 없어서 별로지만 아이들은 그리워한다. 학교 다녀오면 빵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고 아쉬워할 정도다. 뻔하지만 나와 다른 이가 다름 알게 하게 되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음에도 나와는 다르다.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내 향기가 흐르는 것 같지만 어떤 맛을 대할 때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당연한 일임에도 문득 이런 것에 쏠리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된다.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맛은 다들 제각각이다. 동네 로컬푸드에서 사 먹을 땐 비교적 노란색이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면 큰 엄마의 고구마는 열을 만나면 추운 겨울날 스산한 기운마저 돈다.


환경에 따라 모두가 변한다. 각기 상황에 맞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당연하지만 잊고 살 때가 많다. 고구마를 보면서도 여러 의미가 머물다 간다. 아직도 고구마가 많이 남아있다. 고구마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얼만 만큼인지 알아내는 겨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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